며칠 전에 집에 있는 정수기가 고장이 나서 생수를 인터넷에서 싸게 구입을 했었다. 좀 많은 것 같기도 또는 적은 것 같기도 한 2리터 12개.
사실, 남자가 들어도 무겁다. 지난번에 편의점에서 12개를 한손에 6개씩 들고 왔는데, 6개가 족히 10킬로는 되어 보였다. 어쩌면, 이렇게 무거웠기 때문에 나는 이번에는 생수를 편의점에서 직접 구매하지 않고 인터넷으로 주문한 것도 있었다. 물론, 가격이 싼 것도 한 몫 했다.
어제 드이어 생수가 배달되었는데, 벨이 울려 아파트 문을 열어주고, 택배기사인 걸 확인한 나는 현관문을 열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택배 아저씨는 엘리베이터 문을 열자마자 생수를 현관문 앞에 내팽개치듯이 던지면서 작지만 내 귀에 들릴 정도로 욕설을 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작게 혼잣말로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나에게도 들릴 정도니 그렇게 작은 소리로 하진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택배기사는 뭐가 그렇게 바쁜지 3초 안에 생수 12 통과 들릴듯 말듯 한 욕설만을 남긴채 닫히려는 엘리베이터를 손으로 막아서고 잽싸게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정말 3초 였다. 하나 둘 셋 하고 사라졌으니 말이다.
나는 순간 황당했다. 이것은 뭔가 잘못되어도 한 참 잘못된 것 같았다. 나는 멍하니 현관문을 열어둔채 덩그라니 놓여있는 생수를 보며 한동안 멈춰 서 있었다.
과연 나는 욕설을 들을 만한 일을 저질렀는가
사실, 어떻게 보면, 나도 고객이다. 택배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에서 욕을 하다니, 내가 심지어 택배 고객이 아니더라도 아무리 짜증나도 욕을 하는 것은 인간대 인간으로 봐도 실례임에 분명하다. 그것도 모르는 사람 앞에서 말이다. 얼마전에 스마트폰이 고장나 LG 서비스센터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이 택배 기사는 마치 나의 고장난 스마트폰이 고치기가 어렵다고 하면서 서비스센터 직원이 고객을 앞에 두고 짜증내면서 욕한 것과 마찬가지다. 즉, 일반 대기업의 서비스 업체에서는 있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만약 무게가 무거워 그런 짜증을 부렸다면, 그것은 나에게 짜증낼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을 판매한 업체에 항의해야 할 것이다. 생수를 팔지 말라고 업체에 항의하라는 뜻이다. 만약 생수를 팔지 않았다면, 나는 생수를 사지 않았고, 나 스스로 편의점에 가서 생수를 사 마셨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이랬다면, 나는 애초에 택배기사로부터 괜한 욕설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택배기사도 짜증을 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즉, 그 짜증의 원인 제공은 내가 아닌 판매업체이기에 판매업체에 항의를 하거나 짜증을 내야 옳다는 것이다.
또한, 비가 오고, 층수가 다소 높았다는 것 역시 택배기사의 짜증을 불러일으킬 만한 요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비가 오는 것은 자연의 이치고, 내가 12층에 사는 것 역시 택배기사 입장에서 볼 때 불가항력적인 일이다. 내가 여기 사는 것은 자유고, 택배 기사는 그것과 관련 없이 택배 물건을 정해진 장소까지 배달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실 택배의 사전적 의미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물론, 택배기사의 입장을 완전히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여러 물건을 배달해야 하는데, 무거운 물건이 있다면, 그냥 물건을 버리고 가고 싶은 충동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도 그렇듯이, 택비기사의 수입은 건당 수입이지 무게당 수입이 아니라고 한다. 즉, 택배기사 입장에서 볼 때, 무게가 무거운 것을 100개 배달하는 것과 무게가 가벼운 것을 100개 배달하는 것과 수입 측면에서 똑같다는 것이다. 그러니, 무거운 생수를 배달함으로써 괜한 에너지를 소모할 수 밖에 없으니 택배기사로서는 짜증이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이런 경험을 나만 겪은 것은 아닌 것 같다. 심지어, 나는 아래 사진과 같이 생수를 배달한 택배기사의 소심한 메시지도 찾아볼 수 있었다. 차라리 나도 욕이 아니라 아래와 같은 멘트를 적어주셨으면 더 좋았을지 싶다.
이 얼마나 솔직한 택배기사인가. 나는 차라리 이렇게 나에게 고충을 알려줬으면 좋겠다. 다음에 오면 음료수라도 하나 내어주게 말이다. 하지만, 그냥 생수를 던지듯이 배달하고, 들릴듯 말듯 욕까지 하는 것은 정말 도리가 아닌 것 같다.
사실, 나는 택배 받을 때마다 기분 좋은데, 이번 생수 택배를 받고는 기분이 확 상했다. 다음부터는 생수를 인터넷에서 구매하는 것은 자제해야 할 것 같다. 물론, 정수기 수리 아저씨가 와서 빨리 정수기를 고치는 것이 급선무이긴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