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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견

왜 사람들은 뽕과 키높이 깔창을 해야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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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는 외모지상주의가 팽배하다. 흔히 말하는 예쁘면 모든게 용서되는 세상인 것이다. 한 가지 웃긴 것은, 예쁘다고 스스로 잘난체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남들이 인정해주면 그것을 겸손히 받아들여야만 예쁜 사람은 더욱 예쁨을 받을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예쁜 것이 용서되지만, 예쁜 것을 자랑하면 용서가 안 되는 그런 모순이 있다. 참 희한하다.

 

더 희한한 것은 따로 있다. 이제 얼굴이 예쁜 것 뿐만 아니라 완벽한 몸매로 그 바통이 넘겨진 것이다. 얼굴만 예쁘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이제는 몸매까지 좋아야 한다. 얼굴만 예뻤거나 잘생겼다고 자부하는 사람은 이제 몸매도 신경 써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완벽하지는 않다. 그러기에, 여성들은 소위 뽕이란 것을 한다. 가슴이 더 커지게 보이려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남성들은 키높이 깔창을 신발 속에 넣는다. 키가 더 크게 보이려 하는 것이다.

 

왜 뽕과 키높이 깔창이 필수품이 되었나

 

먼저, 외모지상주의가 한층 더 심해진 우리 나라의 사회 풍토를 그 이유로 들 수 있다. 원래는 얼굴만 이쁘장하고 멋있으면 되었지만, 이제는 몸매까지 완벽해야 한다. , 예전에는 예쁘면 용서된다는 말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예쁘지는 않아도 몸매가 좋으면 용서되는 그런 세상이 왔다고도 한다. 물론, 예쁘고 몸매도 좋으면 그야말로 최고로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TV에 나오는 일부 아이돌 가수들처럼 말이다.

 

이런 부러움은 당연히 질투로 이어질 것이다. ,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되고픈 바람이 있다. 말 그대로, 그런 사람들을 아이돌(Idol: 우상)로 삼으면서 우러러 보는 것이다. 하지만, 얼굴을 비롯해서 몸매는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물론, 얼굴은 요즘 의료기술로 많이들 바꾸고 있다. 쌍커플 수술은 남성들의 포경수술하는 것처럼 여성들도 거의 대부분 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몸매는 수술로 하기에 위험부담이 크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몸매를 바꾸는 수술, 가령 지방흡입, 키 크는 수술 그리고 가슴확대 수술 등은 대중화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위험부담이 클 수 밖에 없다. , 아직 대중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심리적 저항도 생길 수 있다. 마치 '나는 가수다'에서 부담이 되어 아무도 가장 먼저 노래를 부르려고 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뽕과 키높이 깔창이다. 뽕브라는 작은 물건이지만, 일부 여성들에게 필수품일 수 밖에 없다. 가슴이 커 보이면 그 자체가 심리적으로 자신감은 커지기 때문이다. 그것을 하기 전에는 가슴이 큰 여성들이 부러움과 질투의 대상이었지만, 이걸 하고 밖에 나가면 자신감이 그 부러움과 질투심을 상쇄한다. 그리고, 이걸 하고 나가면, 남성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수 있다. 요즘 언론에서도 베이글녀라든지, ‘몸매 종결자등으로 남성들도 가슴이 큰 여성들에 시선이 갈 수 밖에 없다. 물론, 이런 시선에 중독된 여성들은 그들 스스로 뽕브라에 자연스레 중독이 된다.

 

남성의 키높이 깔창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키 180이 되지 않으면 루저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아마 이런 말이 나왔을 때를 전후해서 남성들의 키높이 깔창이 유행한 것이 아닐까 한다. 당연히, 남성들은 루저가 되고픈 마음은 눈꼽 만큼도 없다. 키높이 깔창을 끼더라도 다른 사람만큼 혹은 다른 사람보다 컸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당연히, 여자친구와 함께 다닐 때 이 바람은 더욱 간절하다. 여자보다 키가 작은 게 죄는 아닌데, 스스로 죄책감을 갖는 남성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여자 친구의 친구들이 키를 물어보면, 175이상이면 그냥 180이라고 얼렁뚱땅 말하면서 넘어가기도 한다. 그러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식당에서 키의 진실이 밝혀지는 황당한 일도 종종 벌어진다.

 


◆뽕과 키높이 깔창의 사용은 결국 진실을 왜곡하는 것

 

진실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 본래의 목적이라면, 키높이 깔창이 뽕보다 위험 요소가 크다. 보통, 둘 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신발은 벗는 경우가 종종 있어 키높이 깔창은 들키기 쉽고, 뽕은 웬만해서는 전혀 들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뽕이 더 위험할 수 있다.

 

키높이 깔창을 한 남성과 뽕을 한 여성이 사귀었다고 하자. 사귀는 동안 키높이 깔창을 한 남성이 더 빨리 발각될 가능성이 더 크다. 위에서 말한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식당에서 키가 들통나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키높이 깔창이 들통나면 남성의 입장에서는 황당할 수도 있지만, 여성의 입장에서는 그 남자에 대한 진실을 더 빨리 알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만약 이 여성이 남성의 키에 집착하거나 최소한 자기보다 컸으면 하는 바람이 항상 있었다면, 어쩌면 남성이 키높이 깔창을 꼈다는 이유만으로 이별을 고할 수도 있다. 남성의 입장에서는 이건 더욱 황당한 일이겠지만, 오히려 이렇게 빨리 헤어지는 편이 미래를 위해서도 더 좋을 것이다. 매도 빨리 맞으면 좋듯이 깔창도 빨리 들통나는 것이 시간 낭비, 돈 낭비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뽕을 한 여성은 키높이 깔창보다 더 발각되기 어렵다. 비록 남성이 키높이 깔창을 신발 속에 넣었다는 사실을 안 이후라도 바로 자기도 가슴에 뽕브라를 했다고 말하는 여성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만큼 남성에게 잘못된 인식을 오랫동안 심어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남성은 이 여성이 뽕브라를 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속았다는 느낌이 들 수 있다. 물론, 여성들도 키높이 깔창에 속았다고 느꼈겠지만, 남성의 경우는 그 속았다는 느낌이 상대적으로 더 크고 충격적일 수 밖에 없다. 그 시간적 요인도 있겟지만, 남성의 경우 그 환상이 있으면 다소 깊게 빠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논리로, 만약 이 남성이 여성의 몸매에 집착하거나 얼굴은 예쁘지 않아도 가슴은 컸으면 하는 바람이 항상 있었다면, 어쩌면 여성이 뽕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별을 고할 수도 있다. 게다가, 중요한 것은 오랜 시간을 같이 보냈는데, 겨우 이런 것 때문에 헤어졌다고 하면 여자 입장에서는 큰 상처를 받을 수 밖에 없다. 차라리, 처음부터 뽕을 하지 않고 만났더라면 이런 아픔을 애초에 겪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뽕과 키높이 깔창은 자신의 외모를 완벽히 보이는데 큰 일조를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몸을 상대방에게 속이는 역할을 한다. 이것들을 사용하는 것은 비용대비 개인적인 만족감이 최대가 되지만, 이 만족감은 나중에 이것이 진실로 밝혀진다면 큰 아픔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누구나 속았다는 느낌을 받기 싫어하는 만큼 처음부터 뽕과 키높이 깔창을 멀리 하는 것이 살아가는데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있지만, 외모지상주의가 판치는 우리 나라로서는 그렇게 행동하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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