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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영국 일상

영국에서 영어를 잘하면 좋은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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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 살면 영어를 잘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영국에 처음 영어를 배우러 어학연수를 온 사람은 연수 초기의 영어 실력은 다소 낮을 수 밖에 없고, 오랫동안 영국 생활을 해왔던 사람도 한인타운에서 한국 사람들과 어울리며 지냈던 사람도 영어 실력은 그렇게 뛰어나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럼 영국에서 영어를 잘하면 좋은 점이 뭐가 있을까.

 

한국에서 영어를 잘하면 좋은 점은 대우해 준다는 것에 있다. 특히, 국제 공용어라고 추켜세워주는 한국은 영어에 미쳐 있다고 과언이 아니다. 토익, 토플 그리고 아이엘츠까지 수많은 영어 시험이 이미 한국에 상륙했고, 우리 나라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높은 점수를 따기 위해 필살의 노력을 다한다.

 

우리 나라에서 영어의 궁극적인 목적은 물론 취업이다. 영어 성적을 바탕으로 좋은 회사에 좋은 조건으로 취업을 해서, 쉽게 말해서 잘 먹고 잘 살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영어는 모든 학생부터 직장인까지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자리매김했다.

 

영국에서 영어를 잘하면 좋은 점은 역시 대우해 준다는 것에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그 대우와는 그 격이 다르다. 한국은 영어를 잘하면, 우러러 보지만, 영국은 영어를 잘하면, 그저 보통 사람으로 대해 줄 뿐이다. 아니, 동양인 유학생들이 아주 유창한 영어를 구사한다면, 영국인들은 조금 놀라는 눈치고, 이에 조금 더 따뜻한 대우를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국이란 나라가 영어를 쓰는 나라이기에 발생하는 자연스런 현상일 수 있지만, 영국에서 이 대우는 은근히 한 인간의 자존심 문제까지 뻗칠 수 있다.

 

한 예로, 내가 런던의 한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가서, 처음이라 이것저것 메뉴에 대해 물어보고, 음식을 시켰다고 하자. 영어를 유창하게 한다면, 음식을 요리하는데 조금 더 정성을 다한다. 반대로, 영어가 조금 미숙하다고 여기면, 다소 소홀히 할 수 있다.

 

이탈리아 레스토랑 종업원은 보통 영국인이 아닌 경우가 많기에 그들도 영어 실력이 그렇게 뛰어나지 못하다. 식당에서 주로 쓰는 영어 표현을 쓰기 때문에 잘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들이 쓰는 단어는 매일 똑같을 것이다. 만약, 내가 영어를 유창하게 했다면(상대적으로 그들보다 유창하게 말한다면), 그들은 나를 동양계 영국인으로 여길 수 있다. 영국의 이탈리아 레스토랑의 주고객은 당연히 영국인이기에 동양계지만 영국인으로 보이는 내게 음식 요리에 정성을 기울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영어도 미숙한 동양인이 이탈리아 음식을 먹겠다고, 이것저것 서투른 영어로 질문한다면, 이들의 인식은 위와 전혀 다르다. , 영국에 오래 살았어도 나의 영어가 서툴다면, 그들은 나를 관광객으로밖에 보지 않는다. 그들에겐 나는 은연 중에 뜨내기 손님이 되어 버린 것이다. 만약, 이 식당을 영국인 친구가 추천해서 왔는데, 이런 이유로 훌륭한 음식을 먹지 못했다고 하면, 참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다.

 

런던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St. Paul역에서 갑자기 전동차가 멈추고, 거기에 타고 있던 손님들이 모두 내려야 했다. 난 가뜩이나 학교에 늦었는데, 내려야 해서 조금 짜증이 났고, 거기에 일하는 직원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 직원은 그냥 빨리 나가라고 하면서 반대로 나에게 짜증을 내는 것이었다.

 

물론, 그 직원의 그 당시 감정 상태까지 내가 파악할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내가 영국인인 것은 바라지도 않더라도, 단지 영어가 조금 더 유창해서, (상황에 맞게 조금 더 완곡한 표현을 써서 물어 봤으면) 아마 조금 더 나를 따뜻하게 대해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든다. 다행히, 그 때는 영국에 간지 얼마 되지 않아 나에게 좌절감 보다는 동기부여가 되었다.

 

이처럼 영국에서 영어를 하면 좋은 점은, 보통 사람 대우를 받는다는 것이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영국 생활에서 한국인들이 보통 사람 대우받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우리가 한국에서 동남아 사람을 보는 것처럼 그렇게 대놓고 하진 않지만, 콧대 높은 영국인들 마음 속에는 은근히 깔보는 것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