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사촌동생 결혼식에 갔다 왔다. 하객이 정말 많았다. 가족, 친지만 해도 엄청났는데, 대기업에서 일하는 남녀가 만나서 그런지 더 많았다. 마치 대기업 전체 직원들이 온 것만 같았다. 결혼식은 일반 호텔이나 예식장에서 하지 않았다. 그들이 일하는 기업의 본점 (기업 이름은 익명 처리하겠다)에서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예식 진행에 차질이 종종 생겼다. 간혹 가족, 친지 사진을 찍는데, 사진을 한꺼번에 찍지 못해 두 팀으로 나눠서 찍었고, 친구들도 마찬가지로 두 팀으로 나눠서 찍어야 했다. 즉, 가족 및 친구 사진이 모두 4장에 걸쳐서 나온 것이다.
아무튼, 어제 결혼식을 보고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나는 결혼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기회가 되었다. 이제 가을도 되어 결혼식에 많이들 갈텐데, 한번 이 포스팅을 보고 우리 나라 결혼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갖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우선, 결혼식은 즐거워야 할 예식이다. 특히, 신랑신부에게 즐거워야 한다. 이것은 절대 변하지 말아야 하는 사실이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나라 결혼식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사진을 찍으면서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거추장스러운지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불필요한 예식 과정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한번 우리 결혼식을 보자. 모두다 똑같은 옷에 똑같은 진행 순서에 비슷한 시간에 모두 끝마친다. 또, 신랑이 먼저 입장하고, 그 다음 신부가 입장하며, 앞에 어떤 사람이 주례사를 읊고 축가를 부르며 끝난다. 정말 학교 다닐 때 월요일 아침마다 하는 조례처럼 딱딱하기만 하다. 하지만, 어떤 사람도 이런 결혼식 과정에 대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저 남들이 하니까 나도 그렇게 따라 하고 있는 것이다.
남들이 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결혼식이 당연히 즐거울 리 없다. 물론, 요즘 신랑에서 이것저것 장난을 친다든지, 소위 엉뚱한 장난을 해서 신랑을 당황케 하고 하객은 그것을 즐기는 경우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런 쓸데없는 걸로 웃기려고 하지 말고, 진정한 즐거움을 찾으라는 거다. 가령, 신랑신부가 처음 만났던 계기를 떠오르는 행동을 하는 것이 어떨까. 즉, 배드민턴 치다 만났으면 결혼식장에서 배드민턴을 치는 퍼포먼스를 하는 것이다. 이런 퍼포먼스를 통해 결혼식을 보다 의미 있게 만들 수 있고, 단순히 양복 입고 혹은 한복 입고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만약 배드민턴 치다 서로 만났으면, 결혼식을 배드민턴 운동복을 입고 하는 것도 좋은 생각 같아 보인다.
틀에 박힌 생각에 빠진 사람이라면, 나의 이 같은 생각에 어리둥절할 것이다. 무슨 결혼식을 하는데 신랑신부가 배드민턴 운동복을 입고 결혼을 하느냐 하고 말이다. 하지만, 배드민턴 운동복이 아니라 나는 수영복을 입고도 결혼식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만큼 옷은 그저 옷일 뿐이라는 것이다.
한번 이렇게 생각해보자. 우리 나라는 20세기 초반까지 결혼식 때 우리 나라 고유의 옷을 입고 결혼을 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한복으로 결혼식을 했던 것이다. 지금 우리가 입고 결혼식을 하는 양복은 우리 나라에 들어온 지 100년이 조금 넘었다. 그러니까 우리 나라 사람들은 1000년 넘게 결혼을 하면서 우리 나라 고유의 결혼 의상을 입고 했었고, 겨우 100년 정도 양복을 입고 결혼을 한 것이다. 이것은 두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첫째, 결혼식 의복은 바뀔 수 있다. 둘째, 결혼식 의복을 바꾸는 주체는 우리 자신이다. 먼저, 결혼식 할 때 한복에서 양복으로 바뀌니, 양복에서 다른 의복으로 바뀌어도 무방하다. 오히려, 바꿀 수 없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양복도 바뀐 옷인데, 다른 것으로 바뀌어도 괜찮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혼식에서 한복을 입던 양복을 입던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결혼식 때 원래 한복을 입었는데, 불편하다는 이유로 양복을 입고 한다. 그 누가 원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가 불편해서 양복으로 바꾼 것이다. 그런데, 웃긴 것은 요즘 결혼식이 퓨전도 아니고, 양복을 입고 결혼식 하고, 폐백을 할 때는 한복을 입고 한다.
결혼식 때 두가지 옷을 번갈아 입는 나라는 우리 나라뿐이 없다. 물론, 어디 아시아 국가에서 우리 나라처럼 두가지 옷을 입는 나라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최소한 서양은 그렇지 않다. 양복을 입고 결혼식이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예식이 다 끝나면 편안한 복장으로 그냥 청바지에 티셔츠 입고 하객들과 인사를 한다. 정말 간편하다. 하지만, 우리 나라 결혼식은 거꾸로 됐다. 양복을 입고 편하게 결혼식하고, 완전히 끝마칠 즈음에 더 불편한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것이다. 정말 볼 때마다 속으로 실소를 참지 못할 때가 많다.
특히, 우리 나라 신랑들이 결혼식 때 양복에 나비 넥타이를 메는데, 이걸 보면 또 웃음이 나온다. 정작 서양 사람은 결혼식 때 잘 메지 않는데, 우리 나라 사람들이 마치 어디서 근본 없는 것만 갖다 베끼고 와서는 자랑스럽게 나비 넥타이를 메고 서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것의 느낌을 모른다면, 한번 시골 친구들이 서울 사람 흉내 낸다고 하는데, 어색하기만 한 걸 생각하면 쉽게 연상이 될 것이다. 나는 영국에서 유학하면서 영국 결혼식에 몇 번 갔다 왔는데, 나비 넥타이를 멘 신랑을 한번도 못 봤다.
내가 영국 유학 시절 방문한 한 영국 결혼식 모습. 왼쪽에 신랑과 신부가 서 있는데, 신랑은 하늘색 긴 넥타이를 하고 있다. 다른 결혼식에서도 신랑 나비 넥타이는 찾아 볼 수 없다.
서양의 신랑들이 나비 넥타이를 메지 않는 이유는 나비 넥타이가 웨이터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웨이터는 식당에서 음식을 서빙하는 사람이란 걸 다 알 것이다. 그리고, 웨이터의 사회적 위치는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 역시 안다. 즉, 결혼식장에서 자신이 웨이터처럼 옷을 입고 싶어하는 서양 남자는 아무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 신랑들은 결혼식 때 나비 넥타이를 꼭 메야 한다거나 멋져 보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혹은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업체에서 나비 넥타이를 세트로 주니까 그냥 메고 결혼식을 한다.
하지만, 이제부터 신랑들은 자신이 웨이터처럼 보인다는 생각을 해야 하며, 그냥 나비 넥타이를 주니까 멘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일생의 한번 결혼식이니까 나비 넥타이를 메도 상관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일생의 한번 결혼식이니까 왜 나비 넥타이를 메는지 깨어 있으라는 얘기다. 물론, 이렇게 생각하는 신랑은 별로 없겠지만, 결혼식 때 ‘웨이터가 한번 되어 보는게 어때’라고 생각하는 신랑이라면 메도 상관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나라로 결혼식 문화를 최초로 전파한 서양에서는, 특히 서양의 지식인 계층에서는 아무도 웨이터가 되어 보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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