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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견

절대 식당에서 아이들이 떠들게 놔두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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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에는 뷔페에 갔다. 그런데, 조금 어수선했다. 어떤 아이들은 울고 있고, 어떤 아이들은 음식 진열된 공간 주변에서 뛰어다니고 있던 것이었다. 당연히, 식당에는 조용히 음식을 먹어야 하는 곳이다. 그리고, 이렇게 뛰어다닌다면 어른과 부딪혀 접시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 어른들은 어린 아이들의 키가 작아 시선에서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아 충돌이 생기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우리 나라 아이 엄마들은 이런 아이들의 행동에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는 점이다. 오히려, 더 뛰어 놀도록 권장하는 것 같았고, 아니면 아이들이 뛰어다니거나 시끄럽게 떠들어도 자신은 아무 상관 없는 듯 행동한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만약 식당 종업원들이 그런 아이들에게 뛰어다니지 말거나 시끄럽게 떠들지 말라고 말한다면, 이 아이 엄마들은 식당 종업원들에게 왜 아이들의 기를 죽이냐고 항의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자신의 아이들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는 생각은 못하고,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런 이기적인 사람이 왜 우리 나라에 많을까.


 

외국 식당은 이미 6세 미만의 아동 제한 및 아이들 제지 확실히 해

 

내가 유학했던 영국 같은 경우는 식당에서 아이들이 울거나 떠들면, 부모들이 조용히 시킨다. 만약 그래도 말을 듣지 않는다면, 화장실이나 밖으로 데리고 나가 야단을 친다. 아주 엄하게 누가 시키지 않아도 부모들은 아이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고 생각되는 순간에 아이들을 확실히 제지하는 것이다. 또한, 미국은 이미 일부 주에서 6세 미만의 아동들이 식당에 출입금지 조치가 되어 있다. 그 중 팬실베니아주 먼로빌의 ‘McDains Restaurant’과 노스캐롤라이나주의 ‘Olde Salty restaurant’이 대표적이다. 식당 입구에 ‘6세 미만 아동 출입금지혹은 우는 아이는 나가주세요라고 쓰여 있는 것이다. 


'소리지르는 아이들에게 관대하지 않겠다'라는 경고가 붙어 있는 노스캐롤라이나주의 Olde Salty 레스토랑

 

그리고, 외국은 부모들이 외식을 하러 갈 때 우리 나라처럼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가지 않는다. 부모들만의 시간을 보내려고 하고, 외국은 베이비시터(baby-sitter, 미국) 혹은 나니(nanny, 영국)라고 불리는 어린 아이 돌봐주는 문화가 보편화되어 있다. 외국 영화에서 많이들 봤을 것이다. 젊은 여성들이 어린 아이들을 알바 형태로 돌봐주는 것을 말이다. 물론, 이런 여유가 없는 외국 부모들은 어린 아이들을 식당에 데리고 간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고 생각할 시에는 아이들을 조용히 시킨다. 우리 나라처럼 방관하거나 방조하는 것이 아니라 확실히 한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도 외국처럼 바뀌어야 한다.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은 최소한의 예의다. 가령, 어른이 식당에서 시끄럽게 떠든다고 하자. 당연히, 누군가 제지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어른과 같은 소음 크기로 어린 아이가 떠든다고 하자. 당연히, 위의 어른과 이 아이는 다른 사람들에게 똑같은 소음 피해를 주는 셈이다. 따라서, 아이라고 봐주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래서, 우리 나라에는 보호자라는 개념이 있는 것인데, 지금 우리 나라 어린 아이들을 둔 부모들은 이 개념을 망각하고 있다.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어린 아이들, 금치산자, 한정치산자 그리고 어린 아이들과 같은 맥락으로 미성년자까지 보호자가 확실히 관리해야 하는데 지금 부모들은 어린 아이들을 식당에서 마음대로 떠들고 울고 뛰어다니도록 하면서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완전히 잊고 있는 것이다.


 

6세 미만의 아동이 밥 먹을 권리 VS 식당 손님들이 밥을 편하게 먹을 권리

 

6세 미만의 어린 아이들을 가진 부모가 식당에서 아이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제지하지 않는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 발생한다면, 나는 6세 미만의 아이들을 식당에 출입금지 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어린 아이들이라고 시끄럽게 떠들어 다른 사람이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 없고, 그로 인해 손님이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식당 입장에서도 손해가 된다. 스트레스를 받은 손님은 당연히 그 식당을 다시 방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6세 미만의 아동들도 식당에서 자유롭게 밥을 먹을 권리가 있다. 하지만, 6세 미만의 아동이 다른 사람들이 밥 먹는 권리를 제한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더욱이, 지금 상황처럼 부모들이 아이들을 관리하지 않고 넓은 초원에 소를 방목하듯 아이들을 내버려둔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 진다. 게다가, 오히려 아이들을 제지하는 식당 종업원들에게 역성을 내는 예의 없는 부모들이 많다면 아예 6세 미만의 아동들이 식당에 오지 못하도록 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19세기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J. Mill)도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개인의 자유에 대한 유일한 제약은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경우’라고 말이다. 이 말은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자유를 존중해주는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다고 한 것으로, 6세 미만의 아이들이 식당에서 밥 먹을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편하게 밥 먹을 자유를 제약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능하다고 해석이 된다. 그리고, 아이들의 자유를 지켜주기 위해서 보호자가 노력해야 하는데, 만약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그 보호자와 같이 식당 출입금지를 시켜 다른 사람의 편하게 밥을 먹을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공공장소에서 질서를 지키는 것은 가정 교육으로부터

 

존 스튜어트 밀의 말을 꺼내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도 모두 이용하는 공공장소라고 할 수 있는 이런 식당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얘기다. 그리고, 어린 아이들이 이런 질서와 예절에 대해 모르더라도 보호자로서 부모들이 아이들을 제지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만약 아직도 내 말에 동의하지 못하는 부모가 있다면 그것은 가정 교육을 제대로 못 시키는 것이다. 아이들의 기를 죽이는 것과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확실히 구별하지 못하면 제대로 된 가정 교육이 아니란 것이다.

 

만약 이렇게 어릴 때부터 제대로 된 가정 교육을 시키지 못하면 우리 사회는 더욱 예의범절이 없는 사회가 된다. 모두가 사용하는 지하철에서 대변을 보고, 자리에 누워서 다른 사람들이 앉지 못하도록 하며, 담배를 피우는 것과 같은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가 바로 어렸을 때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생긴 어리석은 어른들의 행동의 결과다. 만약 이런 어른들을 계속 양성하고 싶다면, 식당에서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도, 마구 뛰어다녀도 그냥 나둬도 좋다. 당연히, 그럴수록 우리 나라는 예의가 사라진 더욱 혼란한 사회가 되는 것이다


이런 사회를 원하지 않는다면, 어린 아이들을 둔 부모들이여, 절대 식당에서 아이들이 떠들도록 놔두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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