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국에서 10년여간 유학했다. 유학을 마친 후에는 귀국해 카투사에서 2년여간 복무했다. 그리고, 지금은 카투사를 제대한 지 1년 정도 흘렀다. 영국과 카투사에서 생활한 덕분에 영어는 나에게 별다른 어려움을 주지 않는다. 외국 영화 볼 때 자막 정도는 보지 않고 이해할 수 있고, 그 사람이 영국 출신인지 미국 혹은 호주 출신인지도 정확히 구별할 줄 안다. 그렇다고 외국에서 조금 오래 살았다고 으스대는 사람처럼 혀를 굴려가며 우리 나라 말을 하지도 않는다. 또, 우리 나라 말을 하면서 영어 단어를 섞어 쓰는 것도 꼴불견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나다. 그저 나는 보통 우리 나라 사람처럼 한국말을 할 줄 아는 것이다. 따라서, 나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은 내가 영국 유학생에 카투사 출신인 걸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다. 그래서 그런지, 나중에 친해지고 나서 그렇다고 말을 하면 대부분 눈이 휘동그래지면서 놀란다. 지난 1년여간 하도 사람들이 이런 반응을 보여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그러던 바로 어제, 길거리에서 어느 외국인 남자가 멀리서 나와 눈이 마주쳤고 그새 긴 다리로 성큼성큼 나에게 다가왔다. 주말에 정장을 차려 입은 걸로 보아 어디 결혼식에 가는 것처럼 보였다. 다가 오는 것을 보니, 나에게 뭔가 물어볼 것이 분명했다.
역시나 나에게 가까이 오더니, “Excuse me?”를 외쳤다. 말 걸어서 죄송하다는 영어의 표현이다. 나는 아무 대답 없이 외국인이 손에 들고 있는 쪽지만 쳐다보고 뭘 원하는지 듣고자 했다. 내가 쪽지를 쳐다본 걸 눈치챈 그 외국인이 쪽지를 내게 보이며, 여기를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영어로 물었다. 역시나 예상대로 정장이 잘 어울리는 결혼식장이 목적지였고, 억양으로 볼 때 미국사람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결혼식장은 내가 서있던 길에서 100미터 정도 더 올라가 오른쪽으로 돌면 바로 보이는 곳이었다.
그런데, 나는 영어 대신 우리 나라 말로 알려줬다.
“이 길 쭉 가다가요. 저기 보이는 신호등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바로 보여요.”
역시 이해를 잘 못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손동작과 함께 저기 멀리 신호등을 가리키며 오른쪽으로 돌라는 의미에서 손을 오른쪽으로 꺾었다. 그러더니 이제 이해가 좀 되는지 “땡큐”하고 자기 갈 길을 갔다. 나는 외국인의 뒷모습을 보며 한편으로는 뿌듯했고, 또 한편으로는 역시 바디 랭귀지는 만국의 공통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러면, 바디 랭귀지가 만국의 공통어라는 사실을 다들 알 것이고, 왜 내가 외국인에게 우리 나라 말을 하면서 뿌듯했는지 살펴보자.
외국인이 영어로 물어보면 우리 나라 말로 대답하는 네가지 이유
외국인이 나에게 영어로 물어봤을 때, 나는 영어로 대답할 줄 알면서도 우리 나라 말로 대답했다. 그러면서, 나는 스스로 뿌듯함을 느꼈다. 사실, 큰 일도 아닌데도 뿌듯함을 느낀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네가지로 설명될 수 있다.
첫째, 우리 나라에서 우리 나라말을 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글로벌 국가라는 명칭이 멋있어 보이고, 뭔가 있어 보이지만 우리 나라에서 우리 나라 말을 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 그 자체가 자랑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우리 나라 말은 역사가 깊은 말이다. 당연히, 우리는 이 역사를 지켜야만 한다. 아무리 길거리에 영어 간판이 넘쳐 나고, 팝송이 흘러 나오며, 젊은이들이 머리를 노랑, 빨강, 파랑으로 물들여도 우리들의 문화는 우리 스스로가 지켜내야 하는 것이다. 그 중 언어는 우리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문화다. 언어는 사람들이 대화를 하며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전통문화인 것이다. 따라서, 외국 나가서 외국 나라 말을 배우더라도 우리 나라에서만큼은 우리 나라 말을 지켜야 한다. 외국인이 우리 나라에 왔다면, 우리 나라 땅에서는 당연히 우리 나라 말을 쓰도록 하여 지켜내야 하는 것이다.
둘째, 우리 나라에 왔으면 우리 나라말 쓰는 것을 외국인들도 당연하게 여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 외국인은 우리 나라말을 전혀 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외국인이 길을 물어볼 때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외국인들도 우리 나라에 온 이상 최소한 우리 나라 말을 써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영국을 가던 태국을 가던 혹은 그 어느 나라를 가던 최소한 그 나라에 관련된 책을 구입하거나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보듯이 말이다. 따라서, 외국인들도 우리 나라에 온 이상 우리 나라 말을 할 수 있다고 보는 편이 맞다. 최소한 ‘안녕하세요’는 할 줄 안다는 소리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Hello”를 다 알듯이 말이다. 하지만, 위의 길을 물어본다는 외국인은 벌써부터 나에게 “Excuse me”라고 물어보는 큰 실수를 범했다. “안녕하세요”도 모르는 그리고 도움을 받고자 하는 외국인에게 그 대가로 우리 나라 말을 가르쳐주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셋째, 우리 나라에 온 외국인에게 오히려 영어로 대답하는 것은 큰 실례가 될 수 있다. 간혹 우리 나라에 우리 나라 말을 배우러 온 외국인들도 있다. 이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것은 바로 영어로 말을 거는 것이다. 종종 우리 나라에서는 이런 말을 많이 한다. 영어권 나라로 유학갈 때 한국 사람이 많은 곳은 피하라고 말이다. 그 이유는 한국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영어보다는 한국말을 더 많이 쓰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영어 실력이 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 한국말을 배우러 온 외국인들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이들에게는 우리 나라 말을 최대한 쓰는 것이 도움이 된다. 따라서, 외국인들에게 우리 나라 말을 써주는 것은 그들을 위해서도 좋다. 물론, 우리 나라에 있는 외국인들이 모두 우리 나라 말을 배우려고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 나라 말을 써주는 것이 최소한 그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될 수 있다.
넷째, 영어를 잘 하는 것이 결코 자랑이 될 수 없다. 영어는 어떻게 보면 의사소통의 또 다른 도구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 나라에서만 사는 사람이라면 영어는 꼭 필요 없다. 의사 소통하는데 아무 문제 없기 때문이다. 내가 영국 가서 영어를 배웠던 것은 말이 안 통해서 그리고 대학교 졸업하기 위해 배웠던 것뿐이다. 즉, 생존을 위해 영어 공부에 매진했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 나라에 온 외국인들도 우리 나라에 왔으면 그들만의 생존법을 배우고 연마할 필요가 있다. 자기 나라 말인 영어 좀 쓴다고 그것이 어느 나라에서든 말이 통하고 쉽게 살아갈 수 있다는 그런 우쭐한 자세로는 어림없는 것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도 있고, 아마존에 가면 아마존 악어와도 싸워서 이겨야 비로서 살아남을 수 있다. 영어 좀 쓴다고 우쭐하지 말고 우리 나라에 오면 우리 나라말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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