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 다툼은 도덕적 문제?
지하철에서 자리에 앉다가 노약자 분들이 타면 자리를 비켜줘야 한다. 어떻게 보면, 사회적으로 형성된 ‘강요’라고 할 수 있다. 강요란 말이 너무 강압적으로 들릴 수도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예의’라는 말로 순화에서 부른다. 하지만, 그 표현이 무엇이 되었든 그것은 한마디로 공중도덕이란 이름 하에 당연히 행해져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자리를 비켜 주는 것에 대해 자리를 비켜주는 자 (가령, 학생)와 자리를 건네받는 자 (가령, 노인)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에 있다. 학생은 자리에 앉아 자리를 비켜주는 것을 ‘예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자리를 비켜주지 않을 수도 있다. 즉, 그들은 그저 ‘예의 없는 사람’이 되길 선택하는 것이다. 하지만, 노인분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자리를 비켜야 하는 사회적 강요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마찰이 생기고, 사람에 따라 자리를 두고 다툼이 벌어지는 것이다.
예전에 학생들은 자리를 비켜 주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어른들로부터 예의 바른 학생이란 타이틀은 너무나 값진 타이틀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세상은 바뀌었다. 어른들이 예의 바르다고 하던 망나니라고 하던 상관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른들이 하는 말에 우선적으로 반발감부터 드는 것이 요즘 학생들이다. 당연히, 자부심 같은 것을 느낄리 만무하다. 이런 학생들에 자리를 비켜줘야 한다는 사회적 강요는 무의미하고, 만약 이들에게 욕설을 하며 싸우겠다고 한다면 당연히 이들도 거기에 맞서 싸우는 걸 선택한다. 결국, 그런 장면은 인터넷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는 안타까운 현상이 벌어진다.
◆자리 다툼은 경제학적 문제?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 벌어지는 싸움이 인터넷에 공개되고 나면, 보통 자리를 양보하지 않은 학생에게 비난의 화살이 돌아간다.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생각하고, 또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도덕적 문제로만 볼 수는 없다. 특히, 교통 수단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그 교통 수단을 이용하기 위해 돈을 지불하기 때문에 경제학적 문제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수 있다.
가령, 지하철을 이용하는데 1000원의 요금을 냈다고 하자. 이 1000원에는 이용자가 목적지까지 갈 수 있도록 하는 권리는 물론 자리가 있다면 자리에 앉아 갈 권리까지 포함된 가격이다. 물론, 자리가 없다면 서서 가야 한다는 조건도 붙어 있다. 즉, 요금을 낸 사람은 그 자리가 노약자석이 아니라면, 어느 자리에라도 앉아 갈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만약 노약자석이 아닌 자리에 학생이 앉아 있고, 한 노인이 이 학생에게 자리를 강요했다고 하자. 경제학적으로 따지면, 결국 이 노인은 학생이 얻은 권리를 빼앗는 꼴이 된다. 즉, 학생이 요금을 지불하지 않고 몰래 기어 들어와 지하철을 타지 않았다면, 이 노인은 학생이 지불한 1000원의 가치 중 일부를 훼손시켰다는 의미다. 물론, 도덕적으로 봤을 때 이 훼손된 가치가 예의를 베풀었다는 자부심으로 승화되지만, 위에서도 말했듯이 요즘 학생들은 경제적 가치가 이 도덕적 가치보다 더 크다.
게다가, 자리는 제한되어 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희소성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이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이 학생은 얼마 없는 자리를 얻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자리를 차지했을 수도 있다. 1000원의 가치를 다 하기 위해 나름 수고를 한 것이다. 돈을 힘들게 벌면 벌수록 쉽게 돈을 쓰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많은 출퇴근 길에 어렵게 자리를 차지한 학생들은 노약자분들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 학생들은 자신의 수고를 자리에 앉아 편히 가면서 보상받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리를 찾아 앉아 큰 만족을 느끼는 학생에게 자리를 무작정 비켜 달라고 강요하면 더욱 반발할 것이다. 이들은 마치 자신이 공공 도서관에 일찍 와서 자리를 맡아서 공부하고 있는데, 늦게 와서 자리를 비켜 달라고 요구하는 것처럼 어이없다고 느낄 수 있다. 즉, 이들 입장에서는 괜히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는 것처럼 자신이 아무 이유 없이 손실을 본다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도덕적으로는 잘못되었지만, 이들에게는 도덕적인 개념보다 그들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는 것 그리고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그 느낌이 더 중요하다.
◆자리 다툼의 해결 방안은?
자리 양보는 법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 즉,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니란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다양한 계층의 국민들이 모두 나서서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하지만, 지금은 가치관의 혼란과 마찰의 시기다. 학생들은 도덕적 개념이 사라졌고, 노인분들은 여전히 20세기 도덕관을 학생에게 강요하고 있으며, 그 외 중간자 역할을 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 중 대다수의 무관심이 가장 무섭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영상 속 욕설을 하며 서로의 머리카락을 쥐어 잡고 자리 싸움을 하는 학생과 노인만 봐도 주변 사람들은 말리기는커녕 구경하기에 바쁘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말리지 않고 영상을 찍었기에 우리가 볼 수 있었다. 지금 상황이 이렇다. 모두가 자기 일이 아니면 상관을 하지 않는 것이다. 특히, 지하철, 버스에 있는 사람들은 옆의 사람이 누가 누군지 전혀 모르기에, 자기 일이 아니라면 상관을 하지 않겠다는 의식이 더욱 강하다.
사실, 대다수 사람들의 생각이 이런데 학생들이 노인분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리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학생들도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노인분들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에 무관심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은 사회가 점점 개인주의화 되면서 불가피한 현실일 수도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개인주의 탈피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래 손가락 View On 한번 눌러 주시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