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생활이 가장 즐거운 때는,
수업이 끝난 후 바로 친구와 갖는 커피 한잔의 여유와
약간의 수다와 사람 구경할 때...
그들도 동양인인 내가 신기해서 보고,
나도 그들을 보고,
옆의 내 친구는 그런 그들과 나를 번갈아 보고 웃고,
나는 다시 내 친구를 보고 웃고,
보기만 해도 웃긴 친구, 그런 친구를 또 만날 수 있을까...
에핑그린의 영국 라이프, 그 아홉번째 이야기...
<단짝 친구 폴과 클럽에 간 사연>
지겨운 경제 수업이 끝나갈 무렵,
교수는 어김없이 다음 수업 때 해 올 숙제를 읊고 있었다-_-
아, 지겹다 지겨워~~~
"폴, 나 이번 수업 어려우니까, 이번 숙제 너가 좀 도와줘라"
은근슬쩍 난 내 옆의 폴에게 다음 숙제를 맡겼다-_-
폴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신에게 맡기라는 표정...
난 폴의 이런 모습이 좋다 lol
폴...
어느새 단짝 친구가 된 런던 캐나다워터 출신의 흑인친구.
그를 보면 언제나 자신만만하다.
눈은 크고, 입술도 두껍고, 표정도 만가지가 가능한-_-
만날 때마다 요란한 악수와 인사치레...
권투선수가 주먹을 날리듯 맞부딛치고,
주먹은 어느새 펴진 후 악수처럼 되더니,
악수한 손은 서로 당기고, 다른 한 손은 등을 토닥이는,
그런 인사법-_-
처음에는 무척이나 당황했다-_-
(첫 편에 내가 얼마나 흑인이 무서웠는지 보면 알 수 있을 듯-_-)
미시경제학 수업에서 처음 만났는데,
공부는 열심히 안하는 것 같은데 머리가 좀 좋은 것 같다.
흑인치고는 아주 똑똑한 편-_-
흑인이 많이 없고, (나 같은(?) 동양계도 별로 없다-_-)
교실내에 많이 튀는 사람이 폴과 나 뿐이니,
가끔 교수가 나와 폴에게 질문을 하기도 했다.
나에게 질문 하나, 그리고 폴에게 그 다음 질문-_-
보통 교수가 질문하면, 학생들이 모두가 대답하는 분위기지만,
어려운 질문은 나와 폴을 시키는 경우가 종종-_-
가끔 난 이렇게 외친다.
"Sorry, I don't know, Sir,"
창피하지만,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최선.
처음 폴을 봤던 계기도 이런 질문이 폴에게 갔을 때인데,
얘는 어쩌구저쩌구 잘 대답한다-_-
말도 잘하고, 교수의 얼굴도 보니, 쫌 한다라는 표정이고-_-
나도 뭔지 모르지만, 짜식, 좀 하는데-_-?
이후 난 은근슬쩍 이 얘 옆으로 가까이 갔다-_-
한번에 급하게 가면 좀 그러니,
오늘은 10m 옆, 다음은 5m 뒤, 그 다음은 바로 옆.
이런 식으로-_-
(이렇게 소심하지 않은데, 흑인이라 좀 경계-_-)
어렵게 다가갔는데, 의외로 아주 착했다.
마음도 잘 맞고, 닮은 구석과 배울 점도 아주 많았다.
특히, 오늘 같은 숙제를 맡길 수 있다는 점도-_-
수업이 끝난 후 우리 둘은 어김없이 학교 앞 벤치에 앉아,
매점에서 사 온 커피를 마신다.
날씨가 좋은 오후에 우리 말고도 많은 학생들이 나와 지나다니고,
벤치도 자리가 다 가득찼다.
갑자기, 두리번 거리던 폴이 한마디 한다.
"와우"
난 반사적으로 왜 "와우"를 했는지 찾는다-_-
사실, 다른데 볼 필요 없다.
이쁜 여자만 찾으면 되니까-_-
폴이 커피 마시고 쉬는 동안, 와우를 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다, 이쁜 여자가 지나갈 때-_-
난 그 와우의 이유를 찾았고,
폴을 쳐다보니, 고개를 끄덕인다.
잘 찾았다는 의미-_-
저기 앞에 걸어가는 체크무늬 미니스커트...음...
이렇게 폴과 나는 잘 맞았다-_-
나도 크게 소리를 치진 않았지만,
내 입모양은 와우-_-
(폴과 나는 어느새 닮아갔다-_-)
런던 여대생들의 여름 옷차림은 과감하다.
(요새, 한국 여대생들도 많이 과감해졌지만-_-)
폴의 시선은 여성의 특정 부위로 집중되고-_-
난 폴을 보고 웃는다-_-
그리고, 난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보지 않나 둘러보고-_-
(다른 사람들이 우리 둘의 모습을 보면 좀 웃길 것 같다는...-_-)
근데, 폴은 그런거에 신경쓰지 않는다-_-
아니, 난 같이 지내는 동안...
폴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쓰는 모습을 전혀 볼 수 없었다.
얘 성격인듯...-_-
근데, 오늘따라 폴은 왠지 적극적-_-
갑자기 마시던 커피를 나한테 맡기더니...
그 와우에게 달려가는 것이 아닌가-_-^
보통 낮에는 와우에서 끝나는데,
오늘은 달려나갈 정도라면, 완전미녀인 것이다-_-
(폴이랑 같이 밤에 클럽가면, 난리도 아니다-_- 이것은 다음에...)
난 폴 커피를 벤치에 내려 놓고,
그저 멀뚱멀뚱-_-
그 와중에 누가 우리를 보고 있는지 또 두리번두리번-_-
다행히 우릴 주시하는 학생들은 없다-_-
난 왠지 똘마니가 되어 주변을 감시하는 것 같은-_-
난 폴을 지켜봤다.
열심히 손짓 발짓하며 뭘 설명하는 폴-_-
말하면서 가끔 나를 쳐다본다-_-
난 썩소를 날려주고-_-^
이 썩소에는...
이런 거는 한마디 말 좀 하고 나가라고-0-!!!!!!!
....라는 의미가 들어 있었다-_-
폴의 길거리 헌팅은 자주 본 적이 없었지만,
성공률은 낮다-_-
흑인에 큰 거부감을 느끼는 런던여성도 많기에...
클럽에서 보더라도, 폴에게 겉으론 상냥하지만, 속으론 그게 아닌 여성들...
물론, 나 또한 가끔 느낀 것이다-_-
암튼, 이런 길거리 헌팅이라...
성공률은 클럽보다 훨씬 작을 것이다-_-
난 폴과 여성의 대화를 5분간 주시하고...
그 여성 입가에는 미소가...
미소가 보인다는 것은 거의 성공했다는 의미인데...-_-
동시에 폴이 그녀에게 민망한 듯 핸드폰을 내민다.
저 민망한 표정은 폴의 작전-_-
(난 그의 수법을 다 알고 있다-_-)
상대 여자도 처음 보는 남자에게 번호를 주는 것이 민망하기에,
폴이 그 민망함을 우리라는 공동체로 승화시키려 하는....
폴은 헌팅의 고수였다-_-
난 웃음이 떠나지 않았고, (물론, 크게 웃진 않았다-_-)
폴의 자신감에 놀랐으며, (난 영원히 폴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다-_-)
어느새 여자와 바이바이 하고 돌아서는 폴에게
난 일종의 애원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_-
"어떻게 됐어?"
"나 번호땄어"
"진짜, 진짜? 와우, 믿을 수 없어, 놀라워, 완벽해, 지니어스, 유어 더 맨..........."
(이 때 내가 아는 감탄사 다 나왔다-_-)
폴에게 언제 연락할 지 물으니...
금요일에 한단다.
무미건조한 대답-_-
내가 의미한 것은 그게 아니잖니.... OTL
넌 아직도 날 그렇게 모르니-_-?
한동안 말없이 폴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쳐다보니,
성취감에 젖은 그가 뭔가 깨달은 듯...
"아, 주말에 연락하면, 친구도 같이 데려온데"
"진짜, 진짜? 와우, 믿을 수 없어, 놀라워, 완벽해, 지니어스, 유어 더 맨..........."
폴의 대답에 위에서 써 먹은 내가 아는 모든 감탄사 다 나왔다-_-
드디어, 내가 원한 그 대답... lol
헌팅을 했으면, 뒤에 기다려준 친구꺼도 해야쥐,
암...어디 그냥 넘어갈려구-_- 폴이 그럴 얘가 아니지....암...
암튼, 금요일이 기다려졌다 lol
드디어, 금요일 저녁 6시...
오전 수업 마친 후 집에 가서 말끔하게 차려입은 폴과 나는,
피카딜리에서 다시 만났다.
역시나 요란한 인사가 30초간 계속되고-_-
자세히 폴을 보니 무슨 맨인블랙에 나오는 윌 스미스 같다-_-
선글라스만 끼면 영락없는 윌 스미스-_-^
폴과 자주가던 클럽이 있던 피카딜리-_-
들어가기 전에 학생증을 검사하는 런던에서도 아주 엄격한...-_-
물론, 나와 폴에게는 학생증이 있으니, 문제가 없었다 lol
근데, 여자들이 좀 늦었다.
역시 여자들은 꾸미느라 오래 걸린다는 농담을 주고 받고-_-
기다리다 안 오니, 폴은 다시 한번 전화를 날리고-_-
난 내 앞에 주차되어 있는 택시를 거울 삼아 옷매무새를 고치고-_-
바운서(클럽 입구 지키는 사람)는 날 무슨 재키찬 쳐다보듯 보고-_-
폴은 바운서에게 한 술 더떠,
내가 재키찬 아들이라고 농담하고-_-^
난 그저 웃기만 할 뿐이고...-_-
농담하던 중 폴은 갑자기 와우를 외치고,
난 드디어 그녀들이 왔다는 것을 단숨에 눈치챌 수 있었다-_-
바운서를 쳐다보던 난 뒤돌아,
택시에서 방금 내린 그녀들(2명)을 보고...
역시 와우를 외쳤다. 물론 속으로...-_-
화장을 좀 진하게 한 감도 없진 않지만,
그래도 그렇게 화장을 하니,
어린 소녀가 엄마 빨간 립스틱을 몰래 바른 것처럼,
귀여운 감도 들었다.
옷차림은 귀여운 것과 상당히 멀었지만-_-
폴, 고맙다 lol
이런 눈빛을 폴에게 보내니,
손으로 물 마시는 시늉을 한다.
이건 나보고 술한잔 사라는 시늉, 이 넘-_-
하지만, 폴의 성과니 보답은 해주는 것이 인지상정-_-
첫 네잔은 내가 샀고, 다음 네잔도 내가 샀다-_-
이 넘들-_-
폴과 헌팅녀(A)는 두 잔 다 마시자 춤을 추로 나갔고,
남은 여자(B)와 나는 계속 앉아 마셨다-_-
부속품처럼 남은 남녀의 어색한 대화들-_-
음...폴은 나에게 적절한 환경만 제공해주고,
내가 스스로 해쳐나가라는 그런 의미인데...
암튼, 폴은 고수다-_-
자리까지 비켜주는 배려심까지...
난 내가 주로 쓰던 레파토리를 약간 수정해서 B에게 썼다-_-
춤은 잘 못 추었기에, 말빨로 어떻게 해야 되는데-_-
근데 귀엽기까지 한데 의외로 착하기까지 했다-_-
다음 맥주는 그녀가 산다고 하니...
음...괜찮은데 *^^*
그녀가 술을 사러 간 사이 춤추는 폴을 쳐다보니,
폴도 나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윙크를 한다.
저건 잘 되가고 있다는 의미-_-
나도 나름대로 잘 되가고 있는 듯 한데...
B가 작은 손으로 큰 맥주잔을 두개 들고,
내 앞에 내려 놓았다.
치어스하고 마시는 우리들은 술에 취해,
클럽의 댄스리믹스 뮤직에 취해,
그리고, 서로에 취해...-_-
이제 대화에 간간이 웃음이 섞여 있음을 느꼈다-_-
친해졌다는 느낌...
이런 느낌이 들었을 무렵, 폴과 A는 어깨동무하고 돌아오고 있다-_-
역시 춤은 말보다 친화속도가 10배가량 빠르다, 명심하기를...-_-
(얼릉 막춤을 배우던지 해야지 이거 원-_- 폴이 추는 춤은 완전 막춤-_-^)
돌아오자 마자 그녀들은 화장실 간다고 가고,
나와 폴은 그녀들이 시야에 보이지 않게 되자,
또, 와우!!!!!!!!!!!...를 크게 외쳤다-_-
그 날 나는 폴의 대담성으로 만난 레이디들과
즐거운 금요일을 보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