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어느 대기업에서 일하고, 친구 아내는 집안일을 한다. 친구 아내는 이제 막 대학교 졸업을 했고, 아이는 아들 하나 있다. 아들은 아직 유치원까지는 아니고, 어린이집에 다닌다. 그런데,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내는 집에 있으면서 왜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친구에게도 한마디 했다. 하지만, 친구는 이 문제 때문에 부부싸움을 많이 했고, 결국 아내에게 양보해 지금의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정말 안타까웠다. 특히, 집이 있고, 거기서 낮 동안 시간을 보내도 괜찮음에도 불구하고 어린이집에 가야만 하는 어린 아들이 불쌍한 것이다.
아내는 도대체 집에서 뭐하나
친구는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하고 밥도 먹지 않고 출근한다. 친구가 출근한 후, 아내는 일어나 아들과 밥을 먹는다. 밥을 먹고 난 후 자신은 대충 옷을 입고 아들에게는 작은 가방까지 준비해서 근처 어린이집에 간다. 어린이집이 그렇게 멀지도 않다. 아파트 내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걸어서 3분도 걸리지 않는 것이다. 이 부분이 더더욱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
이렇게 아파트 근처의 어린이집에 아들을 보내고 아내가 하는 일은 바로 인터넷이다. 블로그도 몇 개 운영하고 있고, 어느 카페의 운영진도 겸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그냥 인터넷 서핑하는 것은 기본이다. 가령, 인터넷 쇼핑, SNS, 뉴스 보기 등을 하면서 시간을 때우는 것이다. 가끔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가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고 한다. 블로그에 올리기 위한 사진을 찍기 위해서다. 이렇게 아내는 취미생활에 빠질 때 아들은 어린이집에서 나중에 커서는 기억도 못할 어린이집 선생님과 아까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아내는 젊을 때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친구는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친구가 선택한 길은 결국 아내의 취미생활을 존중해주는 쪽으로 택했다. 아내와의 부부싸움을 도저히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친구가 말하길, 아내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어차피, 조금 더 크면 어린이집과 유치원 갈 꺼 아냐. 미리 좀 가는게 뭐 어때!”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친구 아내
1915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사상가 로맹 롤랑(Romain Rolland)은 이런 말을 했다.
“어머니는 아들의 반을 완성시키고, 남은 반은 아내가 완성시킨다.”
지금 친구의 아내는 아들을 어린이집에 하루빨리 내팽개치려고 안달한 것과 같다. 당연히, 아들이 걷기 시작하기 무섭게 자신의 취미생활을 위해 아들을 어린이집으로 보내버리는 것은 아들의 인성 교육에도 좋지 않다. 결국, 로맹 롤랑의 말에 따르면, 이 아내는 돈을 어린이집에 쓰면서까지 아들의 인성을 반도 완성시키지 못하는 것과 같다. 만약 아들이 나중에 커서 이 어머니에 불효한다면 과연 누구 책임일까.
또한, 어린 아들은 어머니와의 교감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이런 것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히 어리석은 짓이다. 게다가, 요즘 어린이집은 도대체 믿을 수가 없다. 뉴스를 보면 어린이집 선생(이런 사람한테는 ‘님’자 붙이는 것도 아깝다.)이 자신의 자녀가 아니라고 때리고, 종종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먹이는 것도 불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일이 실제로 자신의 아들에게 일어난다면, 과연 이 친구의 아내의 심정은 어떨까. 당연히 후회하지 않을까. 만약 후회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이 엄마를 이 아들의 진짜 엄마가 아니라고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어린이집은 사회의 필요악
어린이집은 20년전만 해도 없었다. 그리고, 어린이집에 그때까지 없었던 이유는 사회의 필요악이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자녀는 어머니가 키워야 하는 것이 어딘가에 맡기는 것보다 훨씬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암소도 자신의 낳은 송아지를 떠내 보내면서 눈물을 흘린다. 자신이 낳은 송아지를 직접 키우고 그저 항상 함께 지내고 싶기 때문이다. 본래 어머니의 마음은 이런 암소보다 더하면 더하지 못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본주의 혹은 물질만능주의 사회가 되면서 이제 자신의 자녀를 어머니가 키우는 것이 힘들어졌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어린이집이 생겨난 것이다. 이런 자본주의 때문에 생긴 어린이집답게 어린이집 자체가 너무나 자본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제공하면서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려고 하는 악덕업체가 종종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아도 되는 형편이 된다면, 어린이집에 애들을 보내서는 않아야 옳다. 친구 아내도 집에서 취미생활하기 위해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직접 키워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끝으로,
공자가 여성 그리고 어머니에 대해 좋은 말을 한 적이 있다.
“아름다운 여성의 시기는 짧고 훌륭한 어머니로서의 시기는 영원한 것이다.”
우리 나라 모든 여성들 모두 외양만 아름다운 여성보다 훌륭한 어머니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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