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날이 집 근처라 좋아했던 나에게 한가지 아쉬웠던 적이 있다면, 바로 팬들의 분위기입니다.
내가 느낀 아스날 팬들은 빅게임이 아니라면, 그저 의자에 앉아 축구경기 보는데 여념이 없죠. 아스날 팬들은 경기장에 오는 길에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떠들고 한잔 마시면서 힘이 빠져서 그런지 경기를 볼 때면 유난히 조용합니다. 간혹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팬들도 있긴 하지만, 리버풀 팬 혹은 아스톤빌라 팬들처럼 조직적이고 열광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제보니, 응원의 묘미인 파도타기 응원도 한번도 본 적이 없군요.
아스날은 왜 팬들 분위기가 이렇게 다운되었나 하고 생각해보았습니다. 사실, 지난해쯤 맨유의 퍼거슨 감독도 경기를 마치고, 팬들의 분위기가 장례식 같았다는 경기 후 소감을 말한 적이 있죠. 그때 당시, 맨유도 아스날과 마찬가지로 팬들의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았나 봅니다.
그럼 왜 아스날 혹은 맨유 팬들은 상대적으로 조용할까? 그 이유들에 대해 내 나름대로 분석을 내봤습니다.
우선, 아스날과 맨유는 영국 외 다른 나라 국가 사람들도 많이 관람합니다. 박지성의 맨유 진출로 한국은 물론 아시아에 팬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아스날은 아프리카 선수의 팬들이 많아져 상대적으로 흑인 등 유색인종 팬들이 많이 응원하죠. 기존 영국의 할아버지-아버지-손자로 이어지는 프리미어리그 명문팀의 열렬 가족 팬에 더해 이렇듯 신흥 팬들이 많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런 팬들이 많으니, 구장 내에서의 응원 문화도 서로 눈치를 보며 소극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다른 이유가 있다면, 아스날과 맨유가 전개해 나가는 축구를 더 자세히 보기 위함일 것입니다. 맨유와 아스날은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강력한 팀이자 그들만의 팀 색깔이 뚜렷하죠. 그들이 피치에서 하는 플레이를 구장을 찾은 팬들은 한순간이라도 놓치지 않고 싶어 합니다. 특히, 호날두와 같은 선수가 펼치는 개인기는 한순간도 놓치고 싶어하지 않죠. 이런 팬들은 옆에 사람과 어깨동무하고, 소리지르고, 파도타기 하는 것은 어쩌면 축구관람을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또, 요새는 축구 관람이 무슨 박물관 관람처럼 조용해야 하는 분위기 연출을 강요합니다. 원정 선수들의 비신사적인 태클, 심판의 오심, 홈 선수들의 무기력한 플레이 등으로 과격한 팬들의 반응은 종종 다른 팬들의 눈쌀을 찌푸릴 정도죠. 과격한 팬들의 반응은 과격한 진압이 뒤따라 오게 됩니다. 구장안의 경찰과 안전요원의 숫자는 날로 늘어가고 있어, 이제 팬들은 많이 자제된 모습이죠. 하지만, 며칠전 첼시 선수 디디에 드록바가 동전을 던졌던 것과 같은 행위가 나오면, 팬들은 '너 잘 걸렸다'하고 다시 과격해집니다. 팬들을 비신사적으로 흥분시키면 팬들의 과격한 행동을 부르는 것을 알기에, 영국FA도 드록바에게 징계를 내리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