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책 읽다 보면 꼬마 아이가 떠드는 경우가 많아 거슬릴 때가 많다. 물론, 아이들이 떠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꼬마아이들을 보고 가만히 두는 젊은 부부들은 전혀 자연스럽지 않아 보인다. 이들은 왜 공공장소에서 어린 아이들이 떠들도록 내버려둘까. 왜 우리 미래가 될 수 있는 아이들을 버릇이 없게 자라도록 놔두는 걸까. 아이의 기분따라 떠드는 이유는 다 다르겠지만, 그 이유를 한번 거시경제학적으로 풀어봤다.
◆우리 자식은 넘버1
우리 나라 출산율이 낮다는 것은 이제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수치로 본다면, 우리 나라 출산율은 1970년 4.53명에서 2010년 현재 1.22명으로 급감했다. 세계 평균이 2.5명이 약간 넘는다고 하니, 세계 평균보다도 낮은 수치고, 이는 국제연합인구기금이 조사한 155개 나라 중 거의 꼴찌권에 해당한다. (2006년에는 155개 나라 중 뒤에서 4위) 한마디로, 우리 나라 기혼자들은 대부분 자식을 1명 낳고, 그 외 5 커플당 자식 1명을 더 낳는다고 보면 된다.
이렇게 우리 나라는 자녀 수는 한 명이 많다. '넘버1'인 셈이다. 그러니, 이 아이는 그야말로 부부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사랑스러운 그런 존재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너무 과한 사랑은 때로는 과한 투자를 부르고 이런 과한 투자는 때로는 ‘자식 농사’를 망치게도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즉, 자녀에게 너무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 피아노, 바이올린, 태권도, 미술 학원 등을 보내면 그만큼 자녀들은 ‘배움’에 질리게 되고 학원이란 말만 나오면 노이로제 걸린 사람처럼 거부부터 하는 경우가 생겨난다.
그래도 젊은 부부들은 이런 자녀들을 '넘버1'으로 키우길 멈추지 않는다. 이웃집과 경쟁적으로 자기 자녀가 더 낫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처럼 아들딸들을 학원에 보내기에 여념이 없다. 물론, 자기 자식에 대한 사랑을 내가 막을 방법은 없고, 이것이 막을 수 있다고 막아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자기 자식만 '넘버1'이라는 착각은 특히나 공공장소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큰 피해가 간다. 굳이, 공공 도서관이 아니더라도 지하철, 버스, 은행, 공원 등의 공공장소에서도 비슷한 상황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자식 낳는 것도 투자, 자식에게 싫은 소리 하면 투자 실패?
요즘은 자식 농사가 별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위에서 말했듯이, 출산율이 급감한 것이다. 요즘 귀농도 많아져서 지방으로 가서 농사를 지으려는 분들이 많은데, 정작 자식 농사에는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 전체적으로 봤을 때 큰 손해가 아닐 수 없기에 정부도 출산 장려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최근 서울의 강남구가 셋째를 낳으면 응원금(?)을 준다는 뉴스도 얼마 전에 보았다.
이렇게 자녀 수가 적다 보니, 한 가정당 자녀 1명에 대한 투자는 예전보다 상대적으로 높아질 수 밖에 없다. 그야말로 주식 한 종목에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올인’한 격이다. 투자이론에서 많이 쓰이는 명언, ‘여러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는 것이 있는데, 요즘 부부들은 마치 한 계란을 가슴에 품고 애지중지하고 있는 모습과 같다. 계란에 비유를 해서 좀 이상한 것 같지만, 중요한 것은 사실 계란의 수가 아니라 그 계란에 투자된 금액이다.
자녀 수가 하나뿐이니, 그야말로 한 자녀에게 투자되는 금액이 클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투자되는 돈이 많은 만큼 왠만하면 싫은
소리 하나 하지 않으려고 한다. 괜히, 잘못되면 지금껏 투자된
돈이 몽땅 날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이다. 누구나 자식을 키우면서 우리 아이가 나중에 커서 범죄자나
혹은 사회적 약자가 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연히 사회에서 훌륭하고 중요한 인물이 되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게다가, 자식이 한 명뿐이 없으니 더욱 이렇게
오냐오냐 키울 수 밖에 없다. 한 명 있는 자식이 잘 못되면 그 이유가 부모 때문일 수도 있다는 자책을
하기 쉽고, 그런 자책을 하는 부모들의 마음은 말 안해도 잘 알 듯하다.
만약 자녀 수가 적은 것은 경제적으로 못 사니까 그런 것인데, 무슨
투자되는 금액이 많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위 통계 자료를 보면 알겠지만 지금보다 훨씬 못 살았던 1970년대에
우리 나라 출생률이 4.53이라는 것을 보면 출산율 감소는 절대 한 가정의 경제력의 요인 때문만은 아니다.
아무튼, 이렇게 모든 걸 ‘올인’한 상태에서 자녀에게 꾸중을 하기는 어느 부모도 싫을 것이다. 특히나, 공공장소에서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은데, 그 사람들 앞에서 꾸중을
하게 되면 웬만한 아이들도 주눅들기 십상이다. 또, 너무 주눅들면
나중에 큰 인물이 되지 못한다는 어르신 말씀도 있듯이 부모들도 웬만하면 당당한 아이로 키우려고 하기에 더더욱 아무 말도 안한다. 즉, 당당하면 당당할수록 자식에 대한 투자가 성공할 확률이 더 높고, 또 젊은 부모들을 이것을 잘 알기에 더더욱 아이들이 떠드는 것을 놔두는 경향이 있다. '우리 아들이 좀 떠들겠다는데 어때', '괜히 꾸중만 하면 소심해지니까 안돼', '뭐, 잠깐 떠드는 건데', '꼬마 아이들은 떠들어도 되겠지', '그냥 무시하자' 등등의 젊은 부부들이 하는 모든 생각들은 사실 이것을 합리화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무작정 혼내는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간접적인 방법, 예를 들면 떠들지 않으면 맛있는 것을 준다는 식으로 타이르는 법도 있고, 직접적으로 공공시설에서는 떠드는 것이 아니라고 정확히 알려주는 것 등이 공공시설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냥 무작정으로 아이들을 당당하게 떠들게 나두는 것은 도서관에 온 고시 공부하는 학생, 이 세상이 시끄러워 대피한 어르신들 등을 심히 불편하게 하는 처사다. 따라서, 꼬마 아이들을 둔 젊은 부부들은 공공장소에서 '당당한 아이'를 '당당하고 예의 바른 아이'로 키우는 조금 더 현명한 행동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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