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후임이 실처럼 가는 스크래치를 낸 사고를 냈다. 앞차를 뒤에서
부딪쳤는데, 그야말로 거의 스친 수준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앞에 탄 운전자는 목덜미 뒤를 잡고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면서 내렸다.
후임이 군복을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운전자는 계속 목덜미 잡으며 병원을 가야 된다고 하면서 연락처와 부대 소속을 받아 갔다.
이런 가벼운 사고일 경우, 스크래치 등 차량에 문제가 있을 때 그에 따른 보상을 받기 약속하고,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누가 봐도 꾀병인 것이 다 보이는데, 어디 한번 한 몫을 건지겠다고 이 병원, 저 병원 옮겨 다니면서 치료받고 괜히 합의금을 높게 받으려는 수작은 그들 자신에게도 피곤하고 당하는 사람도 피곤하다. 특히, 나라 지키겠다고 군대에 간 아들뻘 되는 군인한테 터무니 없는 합의금을 요구하는 그 사람은 정말 사회악으로까지 여겨진다.
◆왜 사람들은 높은 합의금을 받으려고 안달일까?
어쩌면 합의금을 높게 부르는 것은 심리학, 사회학 그리고 경제학적으로 당연하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터무니 없는 합의금도 피해자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합리적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먼저, 피해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어떻게든 피해를 받았고, 그 피해는 상대방이 아니었다면 받지 않을 수도 있었다. 즉, 상대방이 100% 잘못을 했다면, 합의금 액수의 선택은 전적으로 피해자에게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협상의 주도권은 대부분 전적으로 피해자에게 주어진다.
심리적으로 볼 때, 작은 사고라도 특별히 애지중지하던 범퍼(스티커 등등)가 긁혔다면 크게 슬퍼할 수 있다. 또, 예전에 겪었던 사고가 기억에서 되살아나는 정신적 고통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이런 심리적인 요인은 가해자의 입장에서는 잘 모른다. 따라서, 이 심리적인 요인은 합의금이 높아 보이는 결정적인 이유가 될 수 있다.
게다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병원비, 차량 수리비 등도 합의금에 포함된다. 물론, 스크래치 같은 그냥 화학약품 사서 헝겊으로 문지르면 없어지는 것이라면
비용이 얼마 안 될 수 있다. 하지만, 가끔 사고 나기 전부터
삐걱거리던 문이나 둔탁한 소리를 내는 엔진이 사고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우기는 사람이 있다. 역시 이
경우에도 가해자의 입장에서는 그걸 증명할 방법이 없다. 따라서, 이것도
합의금이 터무니 없이 비싸게 되는 요인이 된다. 전적으로 피해자의 도덕 정신에 의지해야 되는데, 피해자는 이것을 종종 악용한다. 치료비도 마찬가지다.
또, 겉으로만 청구되는 비용만이 아닌 기회비용도 있다. 즉, 피해자가 일을 하고 있을 경우, 병원에 입원하는 동안 일을 할 수 없게 되므로 입원하는 동안의
급여가 기회비용이 된다. 심지어, 직업이 없는 주부나 학생이
경우에도 법원에서 그 기회비용을 인정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주부의
경우에는 가사노동을 비용으로 계산해 합의금을 돌출하는 경우가 많다. 학생도 아르바이트를 할 경우 그
금액 혹은 학생 등록금, 학생당 교수의 수업료 등으로 그 기회비용을 계산할 수 있다. 이 기회비용들도 모두 합의금에 포함된다.
마지막으로 합의금이 터무니 없이 높은 이유는 바로 사회적인 영향이다. 영화, 드라마 등에서 교통사고가 나는 장면이 나오면 매번 피해자는 뒷목을 잡고 나온다. 일반
사람들은 그것을 은연중 익히게 되고, 똑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따라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무임승차 효과라고 볼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이 교통사고
피해자라면서 목덜미를 잡으니 자신도 똑같이 잡으면 되겠지 하고 여기는 것이다. 즉, 이것은 다른 사람들도 높은 합의금을 받았으니까 나도 그럴 수 있겠지 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이러면서 가해자-피해자 간의 불신이 싹트게 된다. 가해자 입장에서는 목이 삐끗할 정도의 사고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한번 잡은 뒷목을 놓으면 거짓말 하는 꼴이 되니까 계속 잡게 된다. 이럴 경우 가해자가
백번 양보해 피해자가 원하는 합의금을 줄 수도 있지만, 내 후임처럼 군인을 잘못 건드렸다면 합의금은커녕
경찰서에 왔다갔다 조사받고, 국가 보상으로 재판까지 이뤄지면 최소 6개월 넘게 아프지도 않은 뒷목만 잡고 다녀야 할 수도 있다.
◆높은 합의금은 정보비대칭성을 최대한 악용한 것
어떻게 보면, 합의금이란 것은 피해자가 정보비대칭성을 최대한 악용한
경우다. 사고가 난 전후의 자신의 몸과 차량 상태를 가장 잘 아는 것은 피해자 자신이다. 가해자는 그것을 전혀 알 수가 없기에, 피해자의 말과 행동에 따라
판단할 수 밖에 없다. 또, 가해자의 입장에서 미심쩍은 부분이 있더라도 완전한 협상권을 쥐고 있는 피해자의
말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결국, 터무니 없이 높은 합의금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 비이상적으로 높은 합의금은 사회 전체적으로 마이너스가 된다. 위에서 보았듯이, 경제적 손실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각박한 세상을 만들기 때문이다. 아직 운전하면서 교통사고가 한번도 난 적이 없지만, 누가 내 차를 뒤에서 살짝 부딪쳐 스크래치가 난다면 나는 그 사람을 그냥 보내줄 수 있을까.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런 행동이 모여 밝고 따뜻한 사회가 된다면 꼭 한번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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