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디자인을 공부하지도 않았고, 원단을 공부하지도 않았다. 옷도 스포티한 것을 자주 입기에 일부 버버리 매니아처럼 없으면 죽고 못 사는 그런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내가 런던에 7년여 살면서, 런던 곳곳의 버버리 매장을 갈 기회가 있었고, 가는 날이 장날인지, 갈 때마다 한인들을 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의 인기가 영국까지 와서 이어질 줄이야.
런던 시내에 있는 버버리 매장에는 한국인 점원까지 배치되어 있다. 이 매장은 런던을 경유하는 유럽여행객이 꼭 들리는 곳이기도 하다. 여행사와 버버리와의 모종의 관계가 성립되어 있어서인지 리젠트 스트리트를 지나고 있노라면, 형형색색의 등산 모자를 쓴 한인 관광객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각자 버버리 쇼핑백을 한 손에 들고서…
난 왜 한국인에게 버버리가 인기가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내가 그들에게 반문해도 그들에게 시원한 대답을 기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버버리가 1914년 영국 국군이 입었던 군복에 사용했다는 것을 알 턱이 없고, 버버리 코트는 코난 도일, 윈스턴 처칠이 가장 아끼는 겉옷이었으며, 1919년부터 왕실의 옷을 디자인했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짐작 가는 부분은 여럿 있다. 먼저, 한국인에게 이미 갈색 혹은 베이지색의 배경과 검은색, 흰색 그리고 빨강색이 크로스되어 나오는 체크무늬가 명품의 상징이며, 이런 간단한 무늬는 화려한 무늬를 꺼려하는 한국인의 입맛에 딱 맞기 때문이다.
또, 이 버버리 무늬는 이제 옷뿐만이 아니라 가방, 우산, 안경, 핸드백, 지갑, 넥타이, 향수, 아동복 등 이제 안 쓰이는 곳이 없다. 세트를 구매해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에게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버버리로 치장할 수 있어 좋고, 여성복, 남성복을 비롯 아동복까지 있기에 온 가족을 버버리로 무장할 수 있어 더더욱 안성맞춤이다.
언제 한국에 버버리가 입고되었는지는 모른다. 또, 한국에서 언제부터 그 판매가 급격히 증가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한국인에게 버버리가 인기가 있게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한국인의 중도성(中道性)이다. 많은 사람들이 버버리를 찾으면, 나도 버버리를 찾으면 편하다. 그 사람보다 더 나은 명품을 찾아서 암묵의 손가락질 받을 필요도 없고, 버버리보다 못한 브랜드를 입어 부끄러워할 이유도 없다.
버버리보다 좋은 명품도 많고, 버버리에 발톱만큼이라도 따라가지 못하는 브랜드도 많다. 하지만, 그저 가장 무난한 버버리를 입으면, 나 또한 편하게 길거리를 거닐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인기가 있고, 많은 사람들이 입는데 내가 입으면 어떠냐 하는 안도감과 자기암시가 그 버버리의 인기가 시작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영국/영국&한국 사회
왜 버버리는 한국인에게 인기가 있나?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