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저녁에 영화관에 갔다. 다행히, 나는 밥을 먹고 가서 음료수만 샀는데, 역시 많은 사람들이 팝콘을 사는 광경을 목격했다. 간혹 느끼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영화를 보면서 팝콘을 사야만 하는 혹은 먹어야만 하는 그런 강박관념이 있는 것도 같다. 저녁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 큰 팝콘으로 저녁을 대신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저녁을 먹었어도 디저트로 영화를 보면서 팝콘을 꼭 먹어야 영화의 재미를 더 느끼는 것인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과연 영화관에서 먹는 팝콘에 대해 제대로 알고 먹고 있는 것일까. 특히, 대형마트에 가서 몇 백원 더 아끼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지만, 원가보다 8배 이상 비싼 팝콘은 아무 생각 없이 사먹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번 영화관에서 먹는 팝콘이 지닌 경제학적 비밀을 파헤쳐 보겠다.
팝콘 원가는 과연 얼마?
영화관은 당연히 영화를 상영한다. 소비자도 영화관에 영화를 보기 위해 방문한다. 반면, 음료수 내지는 팝콘은 부수적인 서비스일 뿐이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원할 경우에만 팔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아무도 팝콘만을 사기 위해 혹은 콜라를 마시기 위해 영화관에 오는 일은 거의 없다. 즉, 팝콘은 영화관에 영화를 보러 오는 사람들에 한해 팔리게 되어 있으며, 악어가 있어야 악어새가 있는 것처럼 영화관이 있어야 팝콘이 팔리는 그런 관계인 것이다.
하지만, 대형 마트에서 팝콘을 사 봤으면 알테지만, 팝콘 원가는 500원도 채 되지 않는다. 즉, 대형마트에서 큰 팝콘 옥수수를 사서 집에서 전자레인지에 튀겨 영화관에 가지고 가면 영화관에서 파는 같은 양의 팝콘을 500원 정도면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관에서 보통 큰 팝콘이 4000원에 팔고 있는데, 이렇게 하면 8배를 아끼는 셈이다. 그런데, 과연 정말 8배를 아끼는 것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대형마트에서 아무리 싸게 팝콘 옥수수를 산다고 해도 다른 경제학적 비용이 수반된다. 대형마트에서 산 옥수수 값뿐만 아니라 전자레인지를 이용해서 튀기는데 필요한 전기세는 제외하더라도, 직접 팝콘을 만들고, 포장하고, 영화관까지 운반해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어쩌면, 영화관까지 오는 동안 팝콘이 식으면 맛이 없으니, 팝콘을 많이 담을 수 있는 보온병을 또 마련해야 할 지도 모른다. 만약 이런 보온병을 구하지 못했다면, 다 식어버린 팝콘을 먹어야 한다는 의미며, 팝콘 매니아라면 당연히 팝콘을 직접 만드는 것보다 영화관에서 구매하는 선택을 하는 편이 더 낫다. 그리고, 팝콘 매니아가 아니더라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영화관에서 팝콘을 사고 있고, 또 영화관에서 팝콘이 인기인 점을 미뤄 보아 팝콘 원가가 500원이 아니라 그 기회 비용이 4000원에 가깝다고 느끼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영화관은 팝콘만 팔까?
다들 궁금해할 만한 질문이다. 영화관에서 음식을 파는 것은 독점이다. 그런데, 이들은 그 지위를 이용하여 다양한 먹거리를 파는 대신 팝콘만 파는 선택을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이들 입장에서 소비자에게 다양한 먹거리를 제공해야겠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영화관의 존재 이유는 바로 영화 상영이며, 사람들도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관에 온다고 위에서 이미 말했다. 즉, 소비자들은 애초에 영화관에 와서 다양한 먹거리가 있다는 것을 그렇게 반기지도 않고, 어쩌면 어떤 영화를 볼까 고민하는 사람들은 어떤 것을 먹을까 또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에 짜증까지 날 수 있다.
그리고, 영화관 입장에서 볼 때, 팝콘 이외의 다양한 먹거리를 파는 것은 그다지 이익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비용만 증가할 뿐이다. 가령, 마트에서 파는 것처럼 다양한 과자와 비스킷을 판다고 하자. 먼저, 관리 비용이 들고, 보관 비용도 증가한다. 가뜩이나 영화관에 세 들어 사는 입장인데, 창고가 클 리 없다. 그리고, 직원 교육 비용도 증가한다. 가령, 영화관에서 붕어빵을 판다고 하자. 이들에게 붕어빵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것도 다 비용이다.
하지만, 영화관에서 팝콘만 파는 이유는 이런 경제학적인 요소가 아닌 이미지적 요소 때문이다. 이것은 팝콘이 우리 나라 음식이 아니라 서양 음식이란 것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영화도 어떻게 보면 서양에서 건너온 문화다. 둘이 꿍짝이 잘 맞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 나라 사람들은 팝콘을 자주 먹지도 않으며,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화관에 자주 가서 영화를 보지는 않는다. 즉, 이런 비슷한 이미지가 서로 융합되어 영화관에 가면 팝콘을 먹어야 한다는 이미지가 형성되었고, 우리 나라 사람들은 영화관에 팝콘을 파는 것을 당연시 여기게 된 것이다.
행동경제학으로 보는 영화관과 팝콘
사람들은 이제 영화관에 팝콘이 있는 것을 당연시 여기게 되었다. 그리고, 예전에 먹어 보는 짭짤한 맛을 잊지 못하고, 영화관을 찾을 때마다 팝콘도 같이 찾는다. 결국, 이제 사람들은 영화관의 팝콘에 중독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이제 영화관에서 팝콘 말고 다른 음식을 함께 팔더라도 사람들은 그래도 팝콘을 살 가능성이 여전히 높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의 오랜 경험 내지는 습관에서 온다. 어쩌면, 맛을 기억하는 것도 경험에서 온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영화를 보면서 팝콘을 먹는 그 장면도 뇌리 속에 박혀 있다. 그 행동을 기억하고, 영화관이란 장소에 오면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행동경제학은 다른 데에 있지 않다. 경제학이 합리적인 인간이란 가정을 하지만, 행동 경제학은 사람들의 행동 혹은 습관에 기반해 간혹 합리적이지 않은 선택을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경제학이다. 따라서, 행동 경제학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저녁 밥을 먹어 배가 부르더라도 영화관에서 팝콘을 사는 선택을 할 수 있다. 배가 부르면 당연히 더 이상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지만, 사람들은 영화관에서의 팝콘이라는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데 익숙하다는 것이다.
남겨 버리는 팝콘이 의미하는 불편한 진실
팝콘은 영화관에서 부수적인 존재라고 이미 위에서 말했다. 그리고, 이것은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더욱 명확해진다. 남는 팝콘은 어김없이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것이다. 나도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앞에 가는 젊은 연인들이 남긴 팝콘을 버리는 것을 목격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영화관을 나오면서 팝콘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다. 그저 영화가 어땠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뿐이다. 팝콘은 그야말로 영화관에서의 부수적인 역할을 다 하고 장렬히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사람들은 2시간여 동안 영화를 보면서, 팝콘을 들고 있지만 (가끔 먹으면서) 결국 2시간 동안만의 이용가치를 다 하고 버려지게 되는 셈이다. 2시간 동안 팝콘이 한 일은 마치 신부 들러리와 마찬가지로 그저 영화 보러 온 사람 손에 들려진 것뿐이 없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나 영화관에 왔어’라는 느낌을 느낄 수 있도록 한 것뿐이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아무도 팝콘을 기억하지 않는다. 결혼식에서 아무도 신부를 기억하지 신부 들러리를 기억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팝콘은 우리 사회 속 영원히 영화관의 들러리로 활약할 것이다. 아무도 자신을 기억해주지 않더라도 영화관에 올 때마다 팝콘을 찾고, 그것을 2시간 동안 들고 있길 좋아하는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가지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팝콘의 가격은 영화티켓 한 장의 가격과 비슷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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