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국에서 대학을 나왔다. 그래서,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이 많다. 영국, 스페인 등 유럽 그리고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 그리고 일본과 중국 등지에 친구들이 있고, 얼마 전부터 페이스북을 통해 이들과 다시 연락이 되고 있다. 어제는 메신저를 통해 아프리카 친구와 대화를 나눴는데, 이 친구의 예상치 못한 말에 순간 당황했다. 어떤 대화를 나눴고, 어떤 말 때문에 순간 당황했을까.
아프리카 친구와의 오랜만의 대화
이 친구는 현재 두바이에서 일한다고 한다. 금융 관련 쪽으로 그의 나이지리아 고향이 아니라 두바이에서 근무하는 것이다. 나는 대화를 통해 옛날 영국 런던에서의 추억을 공유했다. 이 친구와 나에게 런던은 새로운 도시였고 새로운 생활 환경을 의미했다. 그래서 우리 둘은 더 잘 맞았다.
이 친구는 나에게 나의 서울 생활이 어떤지 물어봤고, 나도 이 친구의 건강은 어떤지, 가족은 잘 지내는지 등을 물었다. 영국에 같이 있을 때, 이 친구가 결혼을 했기에 나는 당연히 아내는 잘 있는지도 덩달아 물었다. 아내 역시 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두바이에서 같이 살고 있진 않고 나이지리아에 있다고 했다.
문제는 그 다음 대화에서 터졌다. 아래는 이 친구와 나의 페이스북 메시지 대화 일부를 캡쳐한 것이다. 빨간색이 내가 말한 대화고 파란색이 그 친구가 말한 부분이다.
위의 대화를 해석하면 아래와 같다. (참고로, 외국 사람들은 영어를 구어체로 쓴다. 나도 외국사람들과 대화할 때 마찬가지였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최대한 문법에 맞게 쓰려고 하지만, 외국 사람들은 문법에 신경쓰지 않거나 줄여서 많이 쓴다. 요즘 우리 나라 젊은 친구들이 줄임체를 쓰듯이 말이다.)
나: 그건 참 오래됐어. 근데, 너 두바이에서 가족과 같이 살아?
친구: 아니, 나 지금 여기서 새로운 아내를 찾고 있어.
나: 무슨 말이야. 결혼하지 않았어?
친구: 응 결혼했지. 하지만, 난 다시 결혼할 수 있어. 내가 무슬림이란 걸 잊지 말라고.
나: 아 맞다. 그렇군. 그럼 다음에 더 이야기 하자. 이만 가야겠어.
친구: 알았어. 브라더. 나중에 연락해.
결혼을 한번 했는데, 결혼을 또 한다고?
이 친구는 영국에서 이미 결혼을 했다. 나는 그의 아내 얼굴까지 알고 있고, 종종 아프리카 음식으로 대접해주기도 했다. 그래서, 오랜만에 대화를 나누면서 아내(혹은 가족)는 잘 있냐고 물었다. 그런데, 이 친구는 두바이에서 새로운 아내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순간 당황했다. 결혼을 했는데, 또 결혼을 한다니 우리 나라 정서상 전혀 맞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친구가 이슬람교인 것을 잊고 있었다. 이 친구는 영국에 있을 때에도 육류를 먹을 때 음식도 가려 먹고, 종종 밥을 며칠 동안 먹지 않기도 했다. 그 때 당시 물어봤을 때, 이 친구는 이슬람교의 풍습 혹은 규율에 따라 그런 행동을 했다고 알려주곤 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 나는 이 친구가 이슬람교를 믿는다는 사실을 잊었고, 이슬람교도들은 일부다처제인 사실 역시 생각치 못했다.
그렇다. 이슬람교도는 일부다처제였다. 예전 오바마 빈라덴이 사살되었을 때도, 빈라덴은 세 명의 부인과 함께 있었다고 한다. 빈라덴 역시 이슬람교도였던 것이다. 나는 우리 나라에 귀국해 살면서 한동안 외국의 다양한 문화를 잊었다. 일부다처제가 당연한 친구를 옆에 두고 생활했던 나는 한국에 귀국하고 보니 이제 일부다처제라는 말을 생각할 시간도 쓸 시간도 없었고, 그렇게 내 기억 속에 자연스레 잊혀졌던 것이다.
문화의 다양성을 잊고 있었다.
새삼스럽게 기분이 묘했다. 문화가 참으로 무섭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던 것이다. 나는 일부다처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문화가 다른 우리 나라에 귀국하면서 이슬람교도들이 일부다처제인 것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일부다처제라는 문화와 동떨어진 우리 나라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일부일처제를 주입식 교육처럼 습관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습관은 참 무섭다. 무의식적으로 행동하게 만든다. 그것이 옳지 않은 일이면 아주 심각하다. 나는 이슬람교도가 결혼을 두세번 혹은 수십번 하여 여러 아내를 거느릴 수 있다고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한국 사회 문화에 적응되어 습관처럼 한국 문화의 잣대를 이슬람 친구에게 갖다 댔다. 문화의 다양성을 잊고 말이다. 어떻게 보면, 친구에게 그러한 말을 했던 것 역시 실수한 것일 수도 있다. 당연한 일인데, 당연하지 않은 것처럼 물었으니 말이다. 결혼을 여러 번 하는 것이 당연한 친구에게 너 결혼하지 않았느냐니. 정말 문화의 다양성이란 것을 완전히 무시한 질문인 셈이다.
위의 대화를 보면 알겠지만, 이 친구가 이슬람교도라고 밝힌 후 나는 황급히 대화를 마무리했다. 당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 다시 메시지를 보낼 예정이다. 혹시나 오해를 했을지도 모르기에, 만약 오해가 있다면 그것을 풀어야 하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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