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강남에 있는 한 큰 서점에 들렸다. 지하에 있는 서점은 아주 넓었다. 주말인데도 사람들이 많았다. 어쩌면, 주말이어서 사람이 많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서점은 책만 팔지 않았다. 음반도 팔고, 문구류도 팔고, 심지어 MP3, 이어폰, DMB, 핸드폰 장식품 등도 팔았다. 내가 놀랐던 것은 서점 안에 목도리도 판다는 사실이었다. 어쩌면, 여름이 되면 선글라스도 팔고,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우산까지 팔지도 모른다. 왜 서점이 이렇게 변했을까.
서점에서 음악을 듣고 커피를 마시는 시대
2000년대 이후 어느 시점부터인가 서점은 책만 팔지 않는다. 서점에서 음반도 팔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은 거리낌 없이 지나칠 수 있지만, 내가 보기에 책과 음악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황순원의 소나기와 귀가 끊어질 듯한 메탈리카의 락이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론, 서정 소설에 클래식 음악은 잘 어울리는 한쌍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책을 읽는데 음악을 듣는 일은 아마추어나 하는 일이다. 음악 자체가 책에 대한 집중력을 흐리기 때문에 진정으로 독서를 즐기는 사람은 애초에 음악 같은 방해물을 두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나도 새벽에 이렇게 글을 쓰면서 절대 음악 같은 것은 듣지 않는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전혀 이상한 방향으로 글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다.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다면, 좀 전에 읽었던 곳 또 읽는 자신을 발견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책을 판매하는 서점에서 별 상관도 없어 보이는 음악을 같이 파는 것일까. 그 이유는 단순하다. 책을 사는 사람에게 여기 음악도 팔고 있음을 알려주는 광고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저 서점 옆에 임대를 해서 책을 사러 온 사람에게 음반도 같이 팔려고 할 뿐이다. 서점에 와서 책을 사가는 사람들이 잠시 들러 음악을 들어보고, 마음에 든다면 그 사람들에게 CD 한 장 더 팔 수도 있는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만약 책 장사가 잘 되었다면, 서점이 자기 공간을 포기하면서까지 음반 가게에 임대를 주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음반가게처럼 서점과 공생관계인 곳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커피전문점이다. 종종 서점 안에 혹은 옆에 커피전문점이 있는데, 이것도 서점의 고도의 전략인 것이다. (혹은 커피전문점의 전략) 종종 사람들은 책을 사지 않고, 보기만 한다. 어떤 사람은 하루종일 서점에서 독서 삼매경에 빠진 사람도 있다. 서점도 다 안다. CCTV는 괜히 천장에 붙어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어떤 손님은 미리 어떤 책을 살 지 정하지 않고 서점에 와서 이리저리 둘러보고 고르는 사람도 많다. 커피전문점은 바로 이런 부류의 손님들을 유도하기 위한 전략인 것이다.
가령, 하루종일 서점에서 책만 읽을 수는 없으니 잠시 시간을 내서 커피를 마시는 선택을 하기 쉽다. 커피는 누구나 마시는 기호식품인 만큼 그럴 가능성이 큰 것이다. 게다가, 수많은 책들에 둘러싸여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면, 쉽게 피곤할 수 밖에 없다. 눈 앞에는 수많은 제목의 책들 중 하나를 선택해서 살까 말까 고민하고, 또 수많은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게 조심조심 걷다 보면 쉽게 피곤해지는 것이다. 이런 손님은 책을 산 후 잠시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서점과 커피전문점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이렇게 서로 보완관계인 셈이다.
서점은 책 장사가 아닌 광고회사?
서점은 책만 팔아서 살아남기 어려워졌다. 그 이유는 바로 인터넷으로 책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아마존은 그 대표적인 예다. 우리 나라도 이와 비슷한 기업들이 많다. 즉, 이제 서점은 책을 파는 것에서 책뿐만이 아니라 다른 기타 물건 및 서비스를 광고하는 쪽으로 옮겨갔다. 체험 광고로 말이다. 경영학에서는 체험 마케팅이란 말로 이것을 고급스럽게 부르지만, 다 마찬가지다.
그럼 서점이 어떻게 체험 광고를 하는지 살펴보자. 우선, 사람들은 서점에 가서 책을 마음대로 볼 수 있다. 위에서 말했듯이, 어떤 사람들은 서점에서 하루종일 책을 볼 작정으로 온다. 서점에서 매일 1권씩 책을 읽겠다는 목표를 가진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서점에 그런 사람을 보고 아무도 뭐라 하는 직원은 없다. 서점은 이런 사람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기쁘기 때문이다. 즉, 서점은 스스로 서점에 들어온 이런 사람들에게 마음껏 광고할 수 있는 광고 노출 독점권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서점도 그들 자체 인터넷 책 판매 사이트가 있다. 서점에 자주 오면 올수록 해당 서점 브랜드 이름에 익숙하게 되고, 그들 사이트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진다. 이런 인지도는 장기적으로 볼 때, 수익을 안겨줄 가능성이 크다. 즉, 나중에 책을 사더라도 자신이 매일 책 보던 서점의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서 책을 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물론, 매장이 없는 인터넷서점이 더 저렴해서 거기서 산다고 하면, 서점의 체험 광고는 역효과를 낸 셈이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해당 서점에서 꼭 책을 사가지 않아도 서점 안에는 음반도 팔고 커피도 판다. 서점에 들어온 사람에게 음악을 들려주기도 하고, 커피 냄새도 풍긴다. 즉, 서점은 귀와 코를 유혹하는 체험 마케팅 장소로 아주 적합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점에 오래 머무는 손님일수록 음반과 커피의 유혹에 넘어갈 가능성이 더 크다. 그리고, 음반과 커피를 판 수익을 서점에 임대료 형식으로 지불하기도 한다. 이럴 경우, 서점 입장에서는 부수입인 셈이다.
또한, 이미 서점에는 책뿐만 아니라 다양한 물건을 판다고 했다. 그리고, 음반 가게가 옆에 있어서인지 MP3, 이어폰, 헤드폰, 스피커 등을 팔고, 디지털 카메라, 광원렌즈, 휴대폰 등 정말 없는 것이 없다. 서점에 온 사람들에게 이것들도 다 광고가 된다. 책만 보면 다소 졸리고 눈이 감기는 사람들이라면, 새로운 전자제품을 보여주면 다시 눈이 번쩍 떠지기 마련인 것이다. 서점은 반전 심리를 이용한 시각적 광고 효과까지 뛰어난 셈이다.
서점이 잡화점이 된 이유는 대형마트 때문?
대형마트에 가보면 온갖 물건을 파는 것을 볼 수 있다. 당연히 책도 포함된다. 물론, 서점보다 그 보유량은 적지만, 그래도 베스트셀러는 기본으로 팔고 있다. 이런 대형마트와 비교해 서점이 과연 경쟁 우위에 있을까.
물론, 아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베스트셀러를 선택하기에, 대형마트에는 베스트셀러만 배치하면 되니 공간 활용도 쉽고 효율적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대형마트에 온 소비자들은 그냥 책이 마음에 들면 카트에 넣고 끌고 다니면 편하다. 반면, 서점에는 카트가 없다. 기껏해야 바구니가 전부다. 아무도 무겁게 책을 바구니에 많이 넣어 ‘들고’ 다니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즉, 서점에는 1인당 책을 사는 한도가 일정부분 정해져 있지만, 대형마트는 마음만 먹으면 베스트셀러 10권 모두 사서 ‘끌고’ 다닐 수도 있다. 또한, 대형마트에 오는 사람들 대부분 자가용을 타고 오기에 역시 서점과 차별된다. 강남에 있는 대형 서점에 오려고 자동차를 끌고 오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이다.
이렇게 서점은 대형마트에도 밀리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서점의 숫자는 정체상태지만, 대형마트는 그 숫자도 나날이 늘어만
간다. 결국, 책 판매 증가량에서도 서점이 점점 뒤쳐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서점도 그 나름대로 진화되는 방식을 택했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다른 제품, 서비스에 대한 광고도 해주고, 대형마트처럼 최대한 많은 종류의 상품, 심지어 그것이 책과 관련이 없는 것이라도 매장에서 파는 선택을 한 것이다.
내가 봤을 때, 서점은 조만간 안경도 팔 것 같다. 책은 눈으로 보는 것이고, 사람들은 책들을 보면 눈이 불편했던 기억을 쉽게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안경을 팔지 않는 서점이라면, 이번 기회에 안경 코너를 한번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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