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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견

교회의 탐욕, 그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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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살아가는데 신앙에 의존한다. 그리고, 교회 및 불당 등에서 그 신앙을 가르치고 공유한다. 교리를 전파하고, 기도하며, 교칙에 따르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그들의 근본적인 목적인 셈이다. 하지만, 이들은 단순히 영적 세계의 믿음만 강조한 것이 아니다. 만약 그것이 종교의 유일한 목적이었다면, 이렇게 널리 전파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종교의 다른 목적은 바로 권력 창출에 있다. 특히, 교회는 중세 시대 때에는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신앙과 종교란 이름으로 대중들을 앞세워 그들은 뒤에서 권력의 힘을 맘껏 누린 것이다. 한동안 이런 일이 뜸하더니, 이제 우리 나라에서도 교회가 정당을 만들어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고 있다. 드디어, 권력을 위해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중세와 지금, 어떻게 보면 역사의 반복이란 말이 딱 들어맞는 것 같다.

 

◆교회의 탐욕과 권력화, 그리고 역사의 반복

 

중세 가톨릭 교회는 면죄부의 판매로 종교 개혁의 단초를 제공했다. 돈을 주고 면죄부를 사면, 죄가 없어진다는 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치에 맞지 않고, 그 당시 중세 사람들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따라서, 이들은 우리들이 정부의 정책에 시위하듯이, 교회를 향해 시위를 했다. 이것이 바로 16세기 유럽 전역을 휩쓴 종교 개혁인 것이다.

 

지금 우리 나라 교회를 보면, 성금 수입이 어마어마한 곳이 많다. 신도가 많아 매주 주말이 되면 교회 주차장은 물론 교회 옆 도로에까지 침범하여 주차를 해 놓고 예배를 보러 들어간다. 차가 막히는 등의 주변 사람들의 피해는 안중에도 없고, 오직 그들의 죄를 사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만, 자신만 성금을 내고 죄를 사하면 된다는 아주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성금은 어떻게 보면 다른 종류의 면죄부라고 볼 수 있다. 성금을 내는 동시에 그 돈으로 자신의 죄를 없애고, 그들 말대로 회개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성금을 많이 내면 낼수록 큰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아무리 살인, 강도, 사기 등 흉학한 범죄를 저질러도 성금만 내면 해결될 수 있다는 그런 극단적인 생각을 지닌 사람도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당연히, 이런 일은 우리 사회에서 절대 용납될 수 없는 부분이다.

 

교회는 이렇게 성금을 모아 점점 탐욕스러워 질 수 밖에 없다. 마치 중세 시대 마구마구 면죄부를 팔아 돈을 번 가톨릭 교회처럼 말이다. 심지어, 중세 때 교회에서 너무 많은 면죄부를 내줘 경제학의 원리대로 면죄부의 가격도 떨어졌다고 하는데, 이것은 교회가 최대로 사람들에게 돈을 끌어 모으기 위해 그 당시 소득이 아주 낮았던 농민들에까지 면죄부를 팔았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그만큼 탐욕이 아주 컸다는 의미이고, 지금 우리 나라의 교회의 탐욕도 이 때와 비교해 만만치 않다. 역사가 반복된다는 것이고, 그렇게 역사가 반복된다고 한다면, 당연히 이제 새 시대의 종교 개혁이 나올 차례만 남았다.

 

영국의 극작가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성인(聖人) 중 한 명인,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는 한 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교회는 겸양을 가르치는 동시에 스스로 겸양을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 우리 나라 교회는 겸양을 가르치지도 않고 스스로 겸양을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교회 신도들을 모아 성금의 형식으로 면죄부를 파는 모습은 교회와 교회의 목사를 위한 부의 축적에 불과하며, 교회 정당을 만들어 스스로 정치판에 끼어들려는 행동도 겸양과 거리가 아주 멀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다. 따라서, 16세기 종교 개혁을 이끈 마틴 루터와 같은 인물이 곧 우리 나라에 등장해 종교 개혁을 이룰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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