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투사/카투사 실화 바탕 이야기

[I am a KATUSA] 나는 카투사다 5

에그2 2011. 4. 15. 19:26
반응형

저녁 점호시간, 나를 포함해 전 부대원이 배럭의 한 공동 휴게실에서 둘러 앉았다. 이 휴게실에는 큰 TV가 있고, 쇼파가 방 가장자리에 둘러져 있었다. 평소에는 휴식 공간으로 쓰다가 점호시간에는 우리 부대원들이 모두 모여 앉아 부대 관련 소식을 주고 받는 공간으로 쓰인다.

 

나는 당연히 문 바로 옆에 있는 끝자리에 앉았다. 표정이 굳었고, 내 몸은 이미 각이 잡힌 자세로 굳어 있는 상태였다. 팔을 쫙 펴 내 무릎 위에 주먹진 두 손을 올려 놓았고, 허리와 무릎이 90도를 유지하도록 했다. 물론, 오래 하고 있을 자세는 아니였다ㅡㅡ;


하지만, 그렇게 해야 했다. 선임들 얼굴을 쳐다보지는 못하고 아무도 없는 내 90도 앞의 벽만  쳐다보고 그런 자세를 한참동안 유지했다ㅡㅡ;

 

처음에는 내가 온지도 모르는 듯, 선임병장이 부대 소식을 전했다. 난 무슨 내용인지 알지는 못하는 것들이었다. 대충 이것저것 선임병장이 말한 후 얼마 지난 후 그의 입에서 신병이란 말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내 옆에 앉은 정 일병은 갑자기 일어나더니 신병 전입 행사를 지금부터 시작한다고 크게 외쳤다.


놀랬잖아ㅡㅡ;


내 앞에서 그렇게 높아만 보이던 정 일병도 여기서는 거의 막내급이었기에 군기가 들어있음을 옆에서 충분히 느낄수 있었다.

 

정 일병의 말과 함께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져 나왔고, 일부는 이미 웃기 시작했다.


난 아무것도 안했는데 벌써부터 부대원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ㅡㅡ;


지금껏 살아오면서 전혀 알지 못했던 나만의 능력인가?ㅡㅡ;


아무튼, 이건 신병 전입행사라고는 하지만 이것은 신병을 위한 행사가 아닌 그들을 위한 행사임을 깨달았다ㅡㅡ;


그들은 웃고는 있지만, 또 날카로운 매의 눈으로 무슨 트집을 잡을 수도 있다는 정 일병의 말을 되새기며 나는 일어서서 외운 것 그대로 발표를 하기 시작했다. 목소리를 가담듬고...담배도 끊었는데 왜이리 목이 메이는지ㅡㅡ;

 

안녕하십니까 에서부터 시작해서 잘 부탁드립니다 까지.

 

남들 앞에서 발표를 많이 하지 않아 떨렸다. 약간 소극적인 성격에 발표하는 것을 약간 꺼려왔기 때문에 이런 분위기가 익숙치도 않았다. 하지만, 난 해야했고, 또 무난히 외운 것을 그대로 잘 발표했다. 하지만, 별 탈 없이 끝났다는 생각은 아직 일렀다. 이제 막 50% 왔다. 이제 선임들의 질문 시간이기 때문이다.

 

역시나 발표가 끝나자마자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주로, 그들에게는 미지의 세계인 영국 생활에 대해 물어봤다. 영국에 가본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였고, 이들도 주로 단기 여행으로 런던땅을 밟아봤을 뿐이었다.


그냥 질문하지 말고 인터넷으로 치란 말이야ㅡㅡ;


물론, 전 부대원들 앞에서 이렇게 말할 순 없았다ㅡㅡ;


나는 자동판매기처럼 그들이 원하는대로 이것저것 대답해주었다ㅡㅡ;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 이야기도 해주었다. 영국 여자들은 어떠냐 등 대답하기 싫은 질문들에는 대충 얼버무렸다. 나는 최대한 보잘것 없어 보이는 그런 남자로 보이기로 작정했다. 괜히, 오지랖 넓은 사람이 되어, 선임들에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는 귀찮은 상황을 만들기 싫었기 때문이다.


내 자유시간을 빼앗기고 싶지 않단 말이야ㅡㅡ;

 

그들이 질문을 하고 내가 답하면 그들은 그들끼리 막 웃었다. 자기네들끼리 농담을 주고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나는 잘 들리지 않았을 뿐더러 그것에 관심이 없었다. 내 관심사는 오로지 이 상황을 빨리 빠져나가는 것ㅡㅡ;


게다가, 그 농담을 들었더라도 그들과 함께 웃을 수 없는 처지였다.

신병은 웃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규칙. 난 이 상황에서 그것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었다ㅡㅡ;

 

호랑이 굴에서 호랑이를 만나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했던가. 나는 지금 정신줄을 놓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의 질문 세례에 웃지 않고 대답한 나는 속으로 안심했다. 내가 생각해도 별다른 큰 실수 없이 한 것 같아서였다.

 

다 끝나고, 부대원들은 서둘러 그들의 방으로 각자 흩어졌다. 나는 문 앞에 서서 일일이 인사를 건넸다. 몇 명은 내 어깨를 쳐주며 응원의 한마디를 남기고 나갔고, 몇 명은 무시한채 문을 나섰다. 이들은 저마다 카투사 생활에 여유를 품은 미소를 지니고 있었다. 그만큼 부대 생활에 잘 적응해 살고 있다는 의미도 되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ㅡㅡ;

 

사람들이 다 나간 후, 정 일병과 신 일병은 나를 데리고 내 방으로 갔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특히 정 일병은 나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신 일병은 나와 같이 방을 쓰는 사이기 때문에 일부러 심하게 하지는 않았지만, 정 일병은 거침이 없었다. 이런 제길ㅡ,.ㅡ;

 

혼난 이유는, 내가 신병 전입 행사 때 웃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정 일병 생각이다. 나는 웃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 일병 생각은 달랐고, 나는 얼떨떨한 느낌으로 꾸중을 들었다. 하지만, 했던 말 또 하고 해서, 내가 언제 웃었냐고 물어보니 내가 얼굴에 미소를 지었단다.

 

그건 오랜 세월 동안 익숙한 얼굴 근육 움직임이 중추신경계를 거쳐 내 얼굴근육에 전달되었을 뿐이다. 생물시간에 졸지 않았다면 이건 내가 어떻게 조절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ㅡㅡ;


꾸중을 들으면서도 젊은 나이에 보톡스라도 맞고 와야 되는지 말할까 고민까지 했다. 게다가, 내게 그 상황이 웃기지도 않았고, 무엇보다도 내 개그 코드와도 전혀 맞지 않았다ㅡㅡ;


왠지 괜히 이러고 있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난 사격을 FAIL하지 않았던가. 나는 긴장되었을 때는 누가 홀랑 벗고 길거리를 뛰어다닌다 해도 전혀 웃지 않을 자신있는데, 이런 나보고 달랑 미세한 미소를 지었다고, 자대로 온 첫 날밤 잠도 못 자면서 혼나고 있는 것이다. 정일병한테 찍힌게 분명했다ㅡㅡ;


시간은 벌써 12시가 가까워져 오고...점호가 9시였으니, 대충 어림잡아도 2시간 넘게 이렇게 꾸중을 듣고 있다ㅡㅡ;

 

첫 날부터 호된 신고식이 된 기분이다. 전체적인 부대 분위기는 밝았지만, 내 바로 위 고참들, 특히 정 일병은 그렇지 않았다. 신병 오면 어떻게 하면 최대한 무지막지하게 괴롭힐 지 작정한 사람 같았다ㅡㅡ;


그렇게 첫 자대배치 받은 날 밤, 이런 저런 고민과 생각으로 잠을 뒤척일 수도 있었지만, 긴장이 풀려서인지 잠은 정말 잘 왔다ㅡㅡ;

 

이제 첫걸음을 했을 뿐이다. 어떤 군생활이 기다릴지이제 시작이다


★주의
이 글은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된 소설입니다. 카투사 생활을 한 필자가 겪고 들은 일을 재구성해서 꾸몄음을 미리 밝힙니다. 감사합니다. 에핑그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