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어리그 축구가 재미있는 궁극적인 이유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축구를 본 지 10년이 넘어간다. 그 중 9년은 런던에서 직접 경기장을 돌아다니며 축구를 봐서 그런지 지금도 TV를 통해 보면 그 경기장의 함성에 마치 내가 관중석에 앉아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간혹 있다. 물론 TV에 써라운드 시스템과 일정 크기 이상의 스크린이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요즘 들어, 프리미어리그를 보면 디펜딩 챔피언 첼시가 좀 부진하다. 박싱데이 경기에서 상승세를 타고 있는 볼턴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2년간 패해보지 못한 아스날을 상대로 3대1 무기력하게 패배했다. 예전 경기력을 되찾지 못하고 있고, 이 문제는 특히 수비진에 두드러진다. 아스날은 역시 경기를 재밌게 한다. 짧은 패스가 결정적인 스루 패스로 이어 지고, 결국 골을 터트린다. 잉글랜드에서 아스날처럼 뚜렷한 축구 스타일로 오랫동안 고수하는 팀도 없을 것이다.
그러다 지난 30일 아스날이 강등권에서 생존해보겠다는 위건에 2대2로 비기면서 역시 축구는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나에게 각인시켜 주었다. 또, 역시 축구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재미있을 수 밖에 없다. 나를 포함해 아스날 팬들은 좀 실망했겠지만, 위건 팬들은 또 얼마나 기뻐했을까. 마치 어린 아이들이 우는 아이를 보고 따라 우는 것처럼, 나도 그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왠지 다시 즐거워졌다.
즐거움도 잠시, 이런 팬들의 반응을 보면서 왜 사람들이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에 그토록 재미를 느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저 패싱 게임이 재미있어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선수가 있어서? 아니면 그냥 우리 동네 축구 팀이기 때문에?
물론, 이런 의문점에도 다 일리가 있고, 또 실제로 이런 이유로 프리미어리그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보다 궁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리그2 팀 밑에 비(非)리그 팀들도 수없이 많다. 컨퍼런스라고 불리며, 주로 이동이 쉬운 지역별로 나눠 경기를 한다. 원칙상 이들도 리그2로 승격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승격에 승격을 거듭하면 잉글랜드 꿈의 리그인 프리미어리그로의 승격도 가능하다. 이런 비리그 팀까지 합하면 약 200개가 넘는 축구 팀이 잉글랜드에 있는데, 이렇게 많은 축구 팀이 있는 만큼 이야깃거리도 많다.
특히, 프리미어리그와 거의 동등한 인기와 권위를 보여주는 FA컵 경기는 이야기보따리다. 승격하지 못한 하위 리그 팀들이 가끔 프리미어리그 팀을 이기는 반란도 재밌지만, 그 승리에 수훈이 된 선수의 원래 직업이 배관공이라는 사실은 팬들을 더욱 즐겁게 만든다. 프로 축구 선수가 아닌 축구가 그저 좋아서 경기에 뛰고,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경기가 끝나고 자기가 우상으로 여기던 상대 축구 선수와 유니폼을 교환하려고 애쓰는 모습 등은 영국 축구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첼시, 아스날, 리버풀 등 기존 프리미어리그 강호의 경기를 보는 것도 즐겁지만, 이들과 단 한번이라도 같은 경기장에서 겨뤄 보기 위해 저 밑의 리그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아마추어, 준프로 선수들이 있기에 축구장에 언제나 열정이 넘친다. 그런 열정을 보는 축구팬들은 자기가 응원하는 팀에 관계없이 기분이 좋을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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