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견

지하철 잡상인이 아직도 존재하는 이유

에그2 2011. 5. 19.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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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지하철을 타면 잡상인이 보인다. 이것저것 물건을 파는 이들은 어떤 이들에게는 짜증을, 어떤 이들에게는 즐거운 볼거리를 선사한다. 물론, 나는 후자 쪽이다. 무표정한 사람들의 얼굴 속에 잡상인이 타면 나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며 즐거워한다. 심지어, 한번은 물건을 직접 사려고 한 적도 있다. 얇은 장갑이었는데, 그 때 현금이 없어서 만져만 보았지 사지는 못했다. 현금이 없다니까 물건을 낚아채는 아저씨의 표정이 굳어 보였지만, 나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저 이런 상황을 즐길 뿐이었다.

 

이런 잡상인들은 지하철에 매일 탄다. 3일전에는 지하철 직원들에게 잡혀가는 것까지 봤다. 그런데, 잡혀 내리는데도 무슨 말이 그렇게 많다. 잘은 들리지 않았지만, 다음 역에 내리면서도 같이 실랑이를 한다. 물론, 물건을 파는 아저씨의 얼굴에는 험악하게 협박하는 모습이 아닌 봐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이 더 많다.

 

◆잡상인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솜방망이 처벌 때문?

 

지하철 직원이 매일 잡아도 잡상인들은 매일 나타난다. 이유는 잘은 모르겠지만, 별로 법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 같다. 만약, 지하철에서 무단으로 물건을 팔 다 걸리면 '1억원 상당의 벌금과 모든 물건 압류' 라는 법이 있다면 아마 무서워서라도 물건을 팔 수 없을 것이다. 물건 하나에 천원인데, 이 물건을 하루에 10만개나 팔아야 1억원의 벌금을 마련할 수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힘들 것이다. 물론, 내가 직접 팔아보지 않아서 그들의 하루 매출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 나라 정부가 별로 이런 법을 만들려고 하는 것 같지 않고, 잡상인들을 보는 시민들도 별로 신경 안 쓰려고 하는 것 같다. 우선, 우리 나라 정부는 지하철 잡상인 판매 금지법과 같은 법을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할 일이 많아 보인다. 우선 순위가 아니란 것이다. , 시민들도 이 잡상인을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가끔 이들이 등장해 시끄럽게 하고, 또는 물건을 끌고 다니며 불필요하게 지하철 공간을 많이 차지하긴 하지만 그래도 크게 문제삼지는 않는다. 물론, 속으로는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직접적으로 나서서 잡상인을 잡아다가 지하철 직원에 넘기려고 하는 시민은 한 명도 보지 못했다. 다들 자기 갈 길 바쁜 시민들이기 때문이다.

 

그럼 결국 이유는 그 물건을 사는 소비자들 때문?

 

내가 생각하기에 이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지하철을 탄 사람들 때문이고, 지금껏 없어지지 않은 이유도 지하철에 탄 사람들 때문이다.

 

우선, 30년전에 흔했던 약장수를 한번 기억해보자. 길거리에서 요란스러운 차력 시험을 보이며 약을 팔던 사람들이 많았다. 요즘에는 이런 약을 파는 사람들이 없어졌는데, 그 이유는 단속도 단속이지만 약의 효능이 팔아오는 동안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도 이게 어디서 약을 팔어라는 말이 생각이 나는데, 이 말에서 유추하듯 약을 판다는 것은 이제 거짓말을 한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만약 지하철 잡상인의 물건에도 품질이 낮다면 30년전 약장수들이 그랬던 것처럼 점차 자연스럽게 도태될 가능성이 크다. 지하철에서 물건을 사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도 이것이 한국산인지 중국산인지 살펴보는 것이다. 그만큼 이것이 정말로 쓸만한지 살펴보는 것이다. 만약 위에서 내가 살펴봤던 장갑이 1주일만에 구멍이 나버린다면 나는 1000원이란 돈을 낭비한 것과 마찬가지다.

 

이렇게 품질이 낮아 쓸모가 금방 없어지는 물건이라면 이 사실을 기억해서 다음에 지하철에서 물건을 사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지하철 잡상인이 약장수보다 뛰어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가격이다. 약장수는 이것이 계룡산 시냇물과 이름도 모르는 신선이 먹는 약초를 이용해 만들었다고 속이고, 또 그 약값을 비싸게 받았다. 하지만, 지하철 잡상인들은 누구나 일상 생활에 꼭 필요할 법한 물건들을 가장 싸게 내놓고 있다.

 

그래서, 이미 물건의 품질에 속은 사람들도 다시 한번 사게 된다. 그까짓 천원 지출하면서 다시 한번 믿어 보려는 심리다. 물론, 믿어 보면서 이번에는 그 전보다 품질이 더 좋았으면 하는 바람도 들어 있다. 로또보다 그럴 확률이 적을 수 있지만, 품질이 안 좋았다 하더라도 천원을 버린듯한 충격은 그다지 크지 않다. 솔직히, 이미 천원을 주고 샀는지 잊어버린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 나라에서 천원의 가치는 지금 너무 낮다. 잡상인들은 이런 요즘 꼬마 아이들도 쳐다 보지도 않는 천원을 낮게 보는 심리를 악용하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이런 잡상인들이 쳐 놓은 심리라는 덫에 빠져 야금야금 우리들의 천원을 바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지하철 잡상인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가 된다.

 

*추신: 하나의 열차는 일반적으로 총 10개의 차량으로 구성되어 있다. 1개의 차량에서 잡상인들이 5개만 팔아도 5천원, 열차 하나당 5만원을 번다는 의미가 된다. 하루에 20개의 열차에서 판다고 가정하면 하루 100만원의 매출이 발생된다. 어쩌면 이런 불경기에 지하철 잡상인은 일반 시민들에게 보이지 않는 노다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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