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견

지금 우리 나라 친일파가 많은 진짜 이유

에그2 2016. 5. 25.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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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좀 시리어스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바로 친일파다. 우리 나라에 여전히 친일파가 많다고 한다. 일제강점기가 지난지 오래되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일본의 지배를 받는 듯한 기분까지 드는 분도 있다고 한다. 독도에 대해 제대로 말 못하고, 위안부 협상도 그렇고 일본 자위대에 대해서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걸 보면 정말 사실처럼 느껴진다.


그렇다면 왜 우리 나라에 여전히 친일파가 많은 것일까? 과연 그저 광복 후 친일파 숙청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내가 보기에 보다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 광복 전후 일제 강점기 이전으로 돌아가보자.


임진왜란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근대 역사를 보면 1900년대 전후로 일본은 해외 문물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미개한 우리 나라로 쳐들어왔다. 그들 눈에는 미개한 조선인이 그저 정복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쳐들어왔고, 점령한 후 마음대로 우리 나라를 강제 점거했다.


물론, 우리 나라가 이 과정에서 아무것도 안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대식 소총에 칼과 창으로 대드는 것은 마치 헤비웨이트 챔피언이 이제 막 입문한 라이트급 선수와 대결하는 것과 같았다. 우리 나라 관군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이라도 있었지만, 조선말기에는 이마저도 없었다. 관군은 그야말로 모조리 죽었고, 심지어 왕비까지 시해되었다. 여기서 중요하다. 이미 우리 나라를 지배하는 사람 중 일제에 반대한 는 사람은 다 죽였다. 왕비까지 말이다.  


관군이 일제에 힘을 못 쓰니 이제 선비들이 나섰다. 조선 선비들은 글만 쓰고 이 때만 해도 조용히 있었는데, 일제가 와서 머리를 깎는 등 조선 관습에 반하는 것을 강요하여 붓 대신 칼을 든 것이다. 하지만, 관군도 당하지 못하는데 선비들이 어찌 일제 군대에 당하랴.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게다가 선비는 애초에 공부만 해서 운동을 좋아하는 일부 선비를 제외하고는 아무 쓸모 없었다. 그저 일제에 반한 사람들은 다 죽은 것이다.


관군도 죽고 선비들도 죽으니, 이제 남은 것이 바로 농민과 천민이다. 이들은 선비에 비해 육체적인 활동을 많이 해 건강했고 신체적으로도 월등했다. 농민과 천민 중 일제에 반하는 이들은 모두 나서 의병이 되었고, 이는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선비들만으로는 역부적이었던 것이 의병 활동으로 어느 정도 일제에 타격이 갔다. 물론, 일제는 '의병들까지 모조리 잡아 죽였다. 꽤 출혈이 있었지만, 일제는 성공했다.


결국, 일제는 우리나라를 침탈하는 과정에서 일제에 적극적으로 반대하여 항쟁했던 조선인 (왕족, 귀족, 선비, 농민, 천민 등)을 대부분 죽였다. 이제 살아남은 사람들은 일제에 암묵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과 일제에 찬성하는 부류로 나뉘었다. 처음부터 일제 침략에 찬양하는 부류는 많이 없었다. 일제에 적극적으로 반대하여 항쟁한 사람들은 대부분 죽고, 나머지 사람들은 우리 나라에서 활동하지 못해 만주로 건너갔다. 


일제 강점기가 36년동안 지속되는 동안, 우리나라 영토 밖에서의 항쟁은 계속되었지만, 거의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여전히 우리 나라 땅은 일제에 의해 지배되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우리 나라 내에서 일제에 암묵적으로 반대했던 사람들은 점점 일제에 찬양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36년동안의 세월동안 우리 나라 자체에 대한 희망을 잃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일제의 회유에 넘어갔을 수도 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영토 안에서의 일제에 찬양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36년. 길다면 긴 세월이다. 이 세월동안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한 국내의 우리 나라 사람들, 즉 친일파들은 그들의 득세를 넓혀 나갔다. 좋은 집에서도 살고 부유하게 먹기도 잘 먹었던 것이다. 이들은 오히려 일본을 좋아하기 이르렀고, 일제가 영원히 우리 나라를 지배했으면 하는 바람도 갖고 있었다. 예전에 영화 '암살'을 본 기억이 나는데, 거기서 전지현 역의 배역이 일제에 빌붙었던 그런 부류였다.


36년간 애초에 우리 나라는 일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일제에 완전히 동화되는 사람도 있었다.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우리나라 영토 내에서는 극히 일부였고, 반대하던 사람들 거의 만주로 건너갔다. 외지로 간 사람들이 우리 나라 안에서의 영향력은 미미하다. 역사책에서는 만주 활동, 독립군, 광복군 활동을 자세히 말해주고 확대해석하고 있지만, 나의 생각이지만 애초에 우리 나라 밖에서의 활동은 우리 나라 독립에 거의 영향이 없었을 것이다. 언론까지 통제된 마당에 점차 일제화 되는 우리 나라 영토 내의 일반 사람들은 바깥 세상의 일을 몰랐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알았더라도 위에서 말한 우리 나라 영토내 암묵적으로 또는 몰래 일본에 반대하는 사람들 일부만 알았을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뜬금없이 일본이 핵 두방을 미국으로부터 맞았다. 얼떨결에 우리 나라는 광복이 되었다. 준비도 안 되어 있는데, 광복이 된 것이다. 일제는 우리 나라를 하루 아침에 쏜살같이 빠져나갔다. 하지만, 일제에 동화된 우리 나라 영토 내에 있던 사람들은 그대로였다. 그리고, 국외에서 우리 나라 독립을 위해 항일운동에 앞장선 사람들도 들어왔다. 하지만, 항일운동 했던 독립투사들과 우리 나라 영토 내에서 친일행세를 하여 득세한 사람들 사이는 협력관계였다. 급작스러웠던 만큼 빨리 사회를 안정시켜야 했으므로 광복군 입장 또는 임시정부 입장에서는 우리 나라 영토 내에서 이미 일제를 좋아하는 또는 일제에 완전히 동화된 기득권 세력과의 협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지금 우리 나라에 친일파가 많은 것은 광복 후 친일파를 처단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애초에 처단할 수가 없었다. 36년 동안의 세월동안 일제 속에 살아 변했다. 너무나 오랜 기간 강점해있었기 때문에 친일파들의 사회 속 뿌리는 생각보다 깊었다. 돈도 많고 땅도 많고 지위도 있었다. 독립군, 광복군 또는 임시정부는 어떠할 도리가 없었다. 오히려 친일파가 독립군, 광복군 또는 임시정부, 기타 적극적으로 항일투쟁했던 사람들보다 많았을 것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이미 적극적으로 항쟁했다면 죽었다. 암묵적으로 행동하다가 못 참고 적극적으로 항일운동하면 잡혀서 죽었다. 종종 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의 친독 행위자 사형을 집행하는걸 보고 부러워하지만, 프랑스는 5년 정도 독일 지배를 받았다. 게다가, 독일은 영국과 전쟁하기 위해 프랑스 내정에 그다지 신경쓰지 못했다. 프랑스의 경우와 우리 나라 친일파 처단에 대한 행위가 다른 것은 당연하다.


결국 이렇게 지금 우리 나라는 친일파가 그대로 남겨지게 된다. 그리고, 지금 욱일기를 달고 일본 해군이 우리 나라로 들어오는 아이러니가 펼쳐지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역사를 가진 민족이라는 생각이다. 만약 광복군이 우리 나라로 들어와 일제를 밀어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물론, 지난간 역사에 만약이란 단어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