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단지 나눠주는 아줌마까지 사람 차별하는 사회
어제는 강남에 점심 약속이 있어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원래 편한
옷차림이 좋아 그냥 청바지에 티셔츠 그리고 그 위에 두꺼운 검은 오리털 점퍼 하나만 걸쳤다. 정말 평소에 다니는
것처럼 해서 밖에 나간 것이었다. 그러다 한 상가가 밀집한 곳을 지나는 중, 내
앞 쪽에 정장 입은 남녀가 3명 정도 있었고, 한 아주머니가
이들에게 전단지를 준 것을 목격했다. 그래서, 점심 시간이고
해서 나도 한 장 받으려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아줌마와 눈을 마주쳤는데, 아줌마는 나에게 전단지를 주려던 행동을 멈추고 딴 곳을 보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동시에 이 아줌마는 마치 저 높은 상공에서도 먹이를 발견하여 잽싸게 낚아채려는 독수리처럼 다른 정장 입은 사람에게 재빨리 다가가서 전단지를 나눠 주는 것이 아닌가.
나는 왠지 웃음거리가 된 개그맨 (상대방의 악수하려다가 일부러 머리를 긁는 포즈로 무안한)이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황당한 나머지 나는 다시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친구를 만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점심은 그냥 친구가 먹고
싶어하는 삼계탕으로 선택해서 먹었다.
전단지 나눠주는 아줌마도 겉모습만 보고 사람 차별, 안타까운 현실
내 앞의 정장 입은 사람들만 밥을 먹는 것은 아니다. 나도 친구와 점심을 먹을 수 있다. 아무리 옷차림이 정장 보다는 못하더라도 배가 고픈 것은 매한가지인 것이다. 어쩌면, 옷차림은 이래도 내 앞 3명의 정장 입은 사람들 다 합친 것보다 그 날 내가 현금이 더 많았을 수도 있다. 즉, 돈이 있고 없음은 그 옷차림과 전혀 관련 없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전단지가 잠재 고객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결과를 낳은 셈이다. 당연히, 이렇게 겉모습만 보고 전단지를 돌리는 아줌마는 전단지를 다 나눠주는데 시간이 더 오래 걸려서 손해고, 마찬가지로 그 식당도 잠재 고객을 놓쳐서 손해다.
무엇보다도, 내가 상대적으로 가난해 보여 전단지를 일부러 주지 않았다는 현실에 안타깝기만 하다. 아무리 정장을 입고 다니는 것이 이 실업률이 높은 나라에서 일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종의 표시라고 하지만, 직접 겪고 보니 더욱 가슴이 아픈 것이다. 하지만, 가난은 죄가 될 수 없다. 무시, 조롱, 비난을 받을 일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가난하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마치 이
사회는 억지로 가난한 사람을 격리시키려고만 하고, 그렇게 보이는 사람과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시간 낭비라고
여기며, 그런 사람에게 전단지 종이 한 장 나눠주는 것도 하찮게 여기는 것만 같다.
게다가, 전단지 나눠주는 아줌마도 비정규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오히려 내가 추운 밖에서 열심히 일하는 전단지 나눠주는 아줌마를 걱정하고 안쓰러워 해야 하는데, 이렇게 우리 나라의 비정규직 600만, 전체 근로자의 35%에 해당되는 이들까지 사람을 겉으로만 보고 판단하니 더욱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정규직보다 적은 임금으로 실직의 위험을 언제나 안고 살아가고 있는 이들인데, 오히려 이들이 가난해 보이는 사람들을 추려 차별하고 있으니 나는 황당하기까지 한 것이다.
가난보다 차라리 허세가 더 큰 죄라면 죄
가난이 죄가 아니라면, 가난을 숨기려는 허세는 죄라고 할 수 있다. 먼저, 허세는 거짓과 그 의미가 같다. 남을 속이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가난을 숨기고 싶은 심리는 있지만, 그래도 허세를 부리면서까지 얻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그럴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가령, 카드빚은 늘어만 가는데 명품을 사는 여성을 한번 보자. 기름값도 못 내면서 외제차를 끌고 다니는 남성은 또 어떨까. 집 장만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파트 가격의 10분의 1만 지불하고, 나머지는 은행 대출로 집을 샀으면서 자기 집이라고 자랑하듯 말한다. 이런 사람은 친구로부터 빌린 돈도 자기 돈이라고 생각해 갚지 않을 사람이다. 그리고, 이들 모두의 공통점은 허세라는 것이며,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에 팽배해져 있으며, 한 마디로 죄다. 비록 허세를 부리면서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고, 또 실제로 그렇게 잘 해왔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비난은 막을 수 없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나중에 허세라고 판명되었을 때의 다른 사람들이 느끼게 될 실망감이다. 사람들은 속았다는 생각에 허세를 부린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는다. 다시는 보지 않을 것처럼 말하기까지 한다. 즉, 허세를 부려 길거리의 아줌마로부터 전단지 한 장을 더 받을 수는 있겠지만, 그만큼 위험이 따른다는 뜻이다. 조금 경제적으로 여의치 않다면, 조금 가난해 보여도 좋다. 전단지 한 장 더 받지 않는다고 살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난함을 숨기지 않는다면, 정직함이란 더 큰 덕목을 행할 수 있다. 이런 사소한 것이 정말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것이다.
옛날 이야기로 다시 새기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덕목
영국의 어느 한 보석가게에 허름한 코트를 입고 다 헤진 구두를 신은 노신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가게 점원은 옷차림만 보고, 그냥 구경 온 사람으로 여기고, 노신사가 다이아몬드에 대해 묻자 어영부영 불친절하게 대답을 해줬다. 캐럿이 어떻고 등 설명해줘도 알아듣지도 못할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얼마 정도 머물다가 노신사가 떠났는데, 알고 보니 이 노신사는 이 보석가게 체인점 여러 개를 운영하는 회장이었다. 가게 점원은 이 사실을 알고 당연히 놀라게 되었고, 그 때 이후로 이 점원은 보석가게에서 일할 수가 없었다는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다.
이것은 너무나 오래된 이야기지만, 지금 내면이 아닌 외양만 중시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이야기이며, 전단지 나눠주는 아줌마는 물론 우리 나라 사람들 모두 명심해야 할 교훈을 주고 있다. 성형, 명품백, 고가의 시계, 외제차 그리고 정장의 옷차림까지 우리 사회는 겉모습에 너무나 열광하고 있지만, 그런 외양만으로 그 사람의 내면과 진실을 판단하려 한다면, 크나큰 실수를 피할 수 없다는 그런 교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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