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택배를 착불로 받아야 하는 황당한 이유
어제는 토요일이라 하루 종일 집에 있었다. 나는 오랜만에 책이나 볼 겸 조용히 쇼파에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경비 아저씨로부터 인터폰이 울려왔다. 황급히 버튼을 누르니 경비 아저씨는 택배가 왔으니 찾아 가라고 했다. 어떤 택배가 왔을지 기억해내려고 했지만, 나는 문밖에 나서기까지 생각해 내지 못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내려온 나는 습관적으로 우편함을 봤고, 아파트 우편함 각각에는 방금전 우체부 아저씨가 왔다 갔다고 누구나 알만큼 새로운 우편물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집 우편함을 보니 다음과 같은 쪽지가 붙어 있었다. 테이프로 붙여 놓은 것이다.
그렇다. 이것은 택배가 왔다는 ‘우편물 도착 안내서’다. 그리고, 이 도착 안내서는 택배를 배달할 때, 택배 받을 사람이 없을 경우, 어쩔 수 없이 남기는 것이다. 그런데, 버젓이 집 안에 있는데, 벨도 누르지 않고 사람 확인도 하지 않고 이 종이쪼가리 하나 남겼다.
무엇이 얼마나 바빴길래 엘리베이터 타고 오는 시간까지 아까웠던 것일까. 그리고, 도착 안내서는 왜 이렇게 악용되는 것일까.
나는 슬리퍼를 신고 경비실까지 도착 안내서, 다른 말로 ‘문 앞까지 택배 배달 하기 싫어요’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걸어갔다. 이제 어떤 택배인지 궁금해 하는 대신, 왜 벨도 누르지 않고, 집도 오지 않고 택배를 경비실에 맡겼는지가 더 궁금했다.
집에서 나와 1분 정도 소요되는 경비실에 도착하여 택배 물건 찾으러 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택배 대장(택배를 맡겨놓을 때 주소와 날짜를 써 놓는다)에 택배를 찾아갔다고 이름을 썼고, 어떤 관계인지 썼다. 여기에 나는 본인이라고 썼다.
작은 박스의 택배는 책 5권이 들었다. 조금 무게가 있었다. 사람에 따라 조금 가벼울 수도 있지만, 여성분들에게는 다소 무거운 핸드백을 드는 기분일 수 있다. 물론, 무거운 짐을 수도 없이 나르는 택배 기사에게는 이 택배 무게는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그런데, 설마 지금 이 택배기사는 이 택배가 무겁다고 우리 집까지 배달하지 않은 것일까.
나는 한 손에 택배를 들고 또 한 손에는 그 “택배 배달 가기 싫어요”라고 적히진 않았지만, 그런 뜻을 내포하고 있는 ‘도착 안내서’를 자세히 봤다. 위의 사진에서 보면 알겠지만, 거기에는 내 이름과 발송한 사람의 이름 그리고 담당집배원의 이름이 명시되어 있었다.(모두 모자이크 처리했음)
얼마나 택배 배달 가기 싫었는지 언제 방문했는지 언제 방문할 것인지도 공란이었다. 당연히, 경비실에 맡기고 가니 나보고 알아서 찾아가든 말든 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아래 경비실에 V자 표시한 앞부분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역시 내가 부재중이었니 대리수령인, 여기서는 경비실에 맡겼다는 문구가 있다. 내가 부재중인지 확인하지도 않았으면서 부재중이라고 말을 한 것이 나를 황당하게 만들었다.
또한, 사실 이 택배는 업체에서 보낸 것이 아닌 지인께서 보내주신 것이었다. 만약 이 택배를 착불로 배달했다면, 우리 집까지 올라와 택배를 배달하고 그 택배비를 받아갈 것이라고 생각하니 괘씸하기까지 했다. 지금은 이미 택배비를 받았으니, 택배 기사 입장에서는 그냥 조금 무거운 책을 집 앞까지 배달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황당하고 괘씸하기도 했지만, ‘도착 안내서’ 아래쪽에 나온 민원실에 전화를 하지 않았다. 전화 해서 담당집배원이 제대로 택배 배달을 하지 않았다고 민원을 넣을 수도 있었지만, 그저 어떤 개인적인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어쩌면, 화장실이 정말 급해 내 택배를 경비실에 맡겼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다음부터 지인으로부터 택배를 받을 때 꼭 착불로 보내라고 말할 예정이다. 지인의 택배비를 내가 내고자 한다면, 지인도 기분이 좋을 것이고, 또 나는 무겁든 안 무겁든 그 택배를 집 대문 앞까지 안전하게 그리고 편하게 배달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 택배비의 가치를 온전히 다하는 일이다.
실제로, 택배비는 보내는 분이 받는 사람의 집 앞까지 택배를 안전하게 배달하기 위해 지불되는 요금이다. 그런데, 나의 경우처럼 택배비의 가치를 다 하지 못하는 택배 배달이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다. 나도 벌써 몇번째 이런 일이 발생하는지 그 숫자를 셀 수가 없다. 따라서, 이것을 해결하는 방안은 착불 뿐이라고 생각한다. 택배비를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택배 기사는 택배 물건을 제대로 전달하게 되고, 그로써 그 택배비는 그 가치를 다할 것이기 때문이다.
택배비 착불이 더 좋을 것이란 생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착불이었다면 내가 경비실에 직접 가서 무거운 택배를 나혼자 투덜거리면서 들고 올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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