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견

왜 구멍가게는 내게 거스름돈을 적게 줬을까

에그2 2011. 6. 30.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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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정도 버스를 기다리다 담배를 사려고 잠시 구멍가게 들렸다. 담배를 사는 김에, 옆에 있는 껌도 하나 같이 샀다. 나는 지갑에서 오천원을 꺼내 아저씨에게 줬고, 잔돈 천원과 동전들을 받아 버스를 놓치기 싫어 허겁지겁 나왔다. 다행히 버스는 오지 않았고, 나는 껌을 주머니에 넣고 담배를 꺼내 피웠다.

 

괜히 허겁지겁 나왔는지, 버스는 한참동안 오지 않았다. 담배를 하나 다 피고, 껌을 씹으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껌을 씹으며, 주머니에 꾸겨 넣었던 잔돈을 정리했다. 천원은 다시 지갑으로 옮겼고, 동전도 얼마가 되는지 세어 보았다.

 

그런데, 동전 숫자가 약간 모자라는 것 같았다. 내가 산 담배는 가격이 오르지 않은 담배이고, 껌도 내가 알고 있는 가격이라면 분명히 잔돈은 부족했다. 나는 순간 구멍가게에 다시 들어가 잔돈을 제대로 받아야되나 고민했다. 버스도 오지 않기에 다시 구멍가게에 들어가 아저씨에게 잔돈 적게 받았다고 말할 시간은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우선, 내 손에는 영수증이 없었다. 음식점에서도 밥을 먹고 영수증을 잘 받지 않는 나로서는 이런 구멍가게에서 영수증을 받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구멍가게 아저씨도 영수증도 없는 손님에게 자신의 금고에 있는 돈을 꺼내 주기에 충분히 못마땅하게 생각할 수 있다. 게다가, 아저씨는 영수증 없는 내 요구를 증거불충분으로 일언지하에 거절할 권리도 있고, 나는 그런 비굴한 상황 속에 내 자신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사실, 비굴한 것은 내가 아니다. 나는 그냥 이 조그만 구멍가게에 몇 백원 기부했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몇 백원 더 벌겠다고, 급해서 거스름돈을 확인 못한 손님을 속인 것은 내 잘못이 아니라 구멍가게 아저씨의 양심의 잘못이다. 그리고, 그런 몇 백원을 벌기 위해 자신의 양심을 속인 그 아저씨가 비굴한 것이다.

 

◆왜 구멍가게 아저씨는 거스름돈을 제대로 주지 않았을까

 

물론, 구멍가게 아저씨는 잔돈을 제대로 줬다고 생각할 수 있다. 반복된 작업이니 착각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니면, 잔돈 놓는 곳에 잔돈을 잘못 넣어둬 실수할 가능성도 있다. 예를 들면, 500원 동전 넣어둘 곳에 잘못해서 100원이 들어가 500원을 줘야 할 때 잘못해서 100원을 주는 경우다. 우연일 수도 있지만, 지금 내 경우도 500원 대신 100원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이다.

 

먼저, 그 아저씨가 단순히 실수를 했다고 하자.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지만, 구멍가게 아저씨는 잔돈 거슬러 주는 일에 아주 익숙한 경험자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지만, 우리는 가게에서 산 물건의 값을 제대로 치를 의무가 있는 것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아저씨는 잔돈을 제대로 거슬러줄 의무가 있다. 그래야, 경제 원리에서 말하는 거래가 성립되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실수라고 해도 결과적으로 아저씨는 거스름돈을 제대로 건네주지 못했고, 이건 한마디로 직무유기를 한 셈이다. 물론, 내가 영수증이 없어 증명할 길이 없지만, 나는 아저씨가 동전을 적게 준 것을 알고 있다. 영화 제목처럼 나는 아저씨가 10분전에 거스름돈을 제대로 주지 않은 것을 알고 있다라고 소리 내어 주장할 수도 있다. 그만큼 확실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슈퍼아저씨의 이 행동이 단순 실수였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아저씨는 자리에 앉아 내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동전을 지불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지켜봤다. 나는 바빠 보였고, 아저씨 판단으로는 잔돈을 확인을 하지 않을 거라는 직감을 했다. 그리고, 아저씨 직감대로 나는 물건을 사고 잔돈 확인을 하지 않고 바로 문 밖으로 나갔다.

 

아저씨는 여기서 오랫동안 일했다. 최소한 편의점 알바 보다는 말이다. 그리고, 손님이 급한지 차분한지 그 행동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직감도 뛰어나다. 가끔, 중고등학생들이 단체로 들어오면 아저씨는 눈에 불을 켜듯 이들을 지켜본다. 그리고, 중고등학생이 계산도 하지 않고 먹은 음료수의 값도 받아내는 수완을 종종 발휘한다.

 

이런 아저씨가 내게 잔돈을 제대로 주지 않은 것은 고의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만약 아저씨의 직감이 틀렸다고 하자. , 내가 허겁지겁 들어와 급하게 물건을 샀는데, 거스름돈을 받고 제대로 잔돈을 확인해서 아저씨에게 잔돈이 잘못되었다고 말했다고 하자. 그러면, 아저씨는 웃으며 실수했다고 반사적으로 말을 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내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 실수로 500원대신 100원 줬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재차 강조할 수도 있다.


아저씨는 단순히 잔돈을 거슬러 주는 것만큼 이런 경험도 많다. 손님이 잔돈을 제대로 못 받았다고 하면, 그냥 다시 제대로 잔돈을 주면 그만이고, 그냥 나가면 아저씨는 자신의 직감이 맞았다는 기쁨과 몇 푼 더 벌었다는 행복을 잠시나마 누릴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아저씨는 지금 자신의 직감을 믿고 잔돈을 판돈으로 놓고 손님과 부정한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거스름돈을 제대로 주지 않은 아저씨의 마음에는 항상 불안한 마음에 이런 부정한 게임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름도 모를 구멍가게를 운영하면서 주변의 대형편의점들은 늘어만 가고 10분 정도의 거리에는 대형 마트까지 하나 있으니, 자신의 구멍가게도 다른 구멍가게들처럼 조만간 문을 닫을 수 있다는 불안감을 항상 느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손님의 거스름돈을 몇 백원 적게 주면서까지 마진을 늘리려는 마음을 헤아려 보면 불쌍하다는 마음까지 든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양심까지 희생하면서 비굴해지는 것은 정말 보기 안타깝다. 이런 작은 돈으로 인간이 타락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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