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가 장래희망? 변호사의 불편한 진실
지금도 물어보면, 장래희망으로 변호사를 꼽는 학생들이 많다. 내 사촌동생도 변호사를 꿈꾸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사촌동생에게 왜 변호사가 될 것이라고 하니, 그냥 멋있다고 한다. 왜 멋있냐고 또 물어보니, 그냥 멋있다고 한다. 내게는 아직 변호사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는 뜻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이런 사촌동생은 조금 예외겠지만, 변호사가 꿈인 학생들은 크게 세가지 이유 때문에 변호사가 되고 싶어한다.
첫째, 법의 정의를 구현하고 사회적 약자를 위해 변호를 해주는 것이 멋있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둘째, 거의 질 수 밖에 없는 사건 변호를 맡았지만, 화려한 언변으로 변호에 성공했을 때의 쾌감 때문이다. 이 부분이 다소 영화로 부풀려진 측면이 많아, 많은 학생들이 착각을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세번째는 그냥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돈은 많이 벌 수도 있지만, 요즘에는 또 예전만큼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학생들이 장래희망으로 삼는 변호사, 그럼 변호사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보다 거시적으로 한번 파헤쳐보자.
변호사가 돈을 버는 이유는 사람들의 불행 때문
변호사는 사건, 사고가 있어야 돈을 번다. 즉, 사람이 살아가는데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발생할 때에만 돈을 번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돈을 버는 곳이 몇 곳 더 있다. 보험회사는 아프고, 죽고, 교통사고 나고, 불이 나고, 물건을 잃어 버렸을 때를 이용해서 돈을 벌고 있다. 렉카 서비스 회사는 교통사고가 나야만 돈을 벌 수 있다. 일본의 건설업자들이 돈을 버는 방법은 지진이 한번 심하게 나서 건물이 폭삭 무너졌을 때다. 그래야 또 다시 건물을 지을 수 있으니 말이다.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일반 사람인 경우, 변호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을 겪었다는 뜻이 된다. 또, 일생 동안 변호사를 한번도 만나지 않아야 진정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얘기하는 이도 있다.
물론, 변호사는 사람들을 변호함으로써 사회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혹은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변호사가 꼭 옳은 일만을 하고 있을까. 이것은 단순히 피해자는 물론 피의자에게도 변호사가 변호를 한다는 사실만으로 모순이 된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변호를 하고, 그들의 형량을 낮추는 것이 변호사들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그럼 또 이렇게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겠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니까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어쩔 수 없이 양쪽 모두 변호를 해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것도 마찬가지로 모순이 있다. 변호사들은 종종 피의자들과 형량을 두고 거래를 하길 좋아한다. 과연 형량을 두고 거래를 하는 것이 인도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정치적 혼란에도 변호사는 돈을 벌어
정치권으로 눈을 돌려 보면, 변호사들은 정치적으로 혼란할 때 돈을 번다. 이제 곧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는데, 정권이 바뀌면 또 엄청난 후폭풍이 예상된다. 이전 대통령의 비리를 캐기 위해 고소를 하고, 또 맞고소를 하며 변호사를 선임하여 변호사의 일거리가 순식간에 늘어날 조짐이 보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자신의 법률사무소로는 모자라 사건을 다른 법률사무소에 하청을 둬서 처리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일이 많아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불안하면, 비리가 많아진다. 가령, 지하철 건설하는데도 비리를 저지르고, 서울 시내 빌딩 하나 건설하려고 해도 기업으로부터 비자금을 받았다는 등의 특혜 시비가 붙는다. 이런 사건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변호사는 바빠지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그들의 고객이 벌금을 적게 낼 수 있을까 혹은 형량을 적게 살까 고민하기에 바쁘다. 변호사들은 당연히 그들의 고객이 무죄 선고를 받도록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성공 보수로 엄청난 양의 수수료가 기다리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그래서 법을 어기는 것에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는다. 정권 잡을 때 당시, 자신을 돕던 유능한 변호사들을 돌봐주고, 정권에서 내려온 후에는 변호사들이 자신의 뒤를 봐주는 상부상보(?)의 미덕을 보여주기에 바쁜 것이다.
정치권보다 법을 더 두려워하지 않는 재벌
사실, 정치권보다 재벌가들은 법을 더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당연히 돈이 더 많기 때문이다. 이것은 최근 삼성가의 유산 분쟁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피보다 돈이 더 중요한 곳이 재벌의 세계인 것이다. 그리고, 유산 분쟁 같은 것이 있다면 당연히 변호사가 필요하다. 그래서, 어쩌면 변호사는 우리 나라 재벌들이 모두 유산 분쟁을 했으면 하고 바랄 수도 있겠다. 그래야 그들 앞으로 큼지막한 수수료라는 떡고물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또, 재벌가는 그 안에 법무부 혹은 법률팀이 있다. 변호사들로 구성된 기업내 부서 혹은 팀이다. 하지만, 이들은 재벌가의 유산 분쟁 같은 다소 개인적인 일에 관여를 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간의 분쟁, 기업과 소비자 분쟁 혹은 특허 전쟁처럼 외국 기업간의 경쟁을 위해 일한다. 당연히, 이들은 기업에 종속된 관계이기 때문에 수수료가 아니라 성과급으로 받는다. 물론, 수수료나 성과급이나 이름만 다르지 둘의 차이는 거의 없다. 성과급은 수수료보다 그 액수가 낮을 수 있지만, 기업에 종속되어 있다면, 성과급은 물론 월급을 받는다는 뜻이기에 보다 안정적인 수입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재벌가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준법의식이 아주 약하다는 것에 있다. 가령, 이들은 법을 어겨 10억의 벌금을 내더라도 1000억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다면, 당연히 법을 어기는 선택을 한다. 기업의 목적은 수익의 극대화다. 법을 어겼지만, 벌금을 제외하고 990억원의 매출을 올린다면, 그들 입장에서는 법은 어길 가치가 충분히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이들은 기업 매출에 치우쳐 생각하기에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 변호사들은 바로 이들이 죄의식을 느끼지 않게 뒤에서 열심히 돕고 있는 것이다. 변호사는 법의 정의를 위해 존재하는데, 이들이 기업에 들어간 이상 돈을 위해 그리고 회사의 매출을 위해 법의 정의는 구겨진 종이처럼 쓰레기통에 내던져진 것이다.
빈부격차가 심해질수록 변호사들은 좋아해
재벌가들이 돈을 벌고, 정치인들이 권력을 이용해 뒤로 이권을 챙길 때 서민들은 점점 소외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렇게 소외되어 빈부격차가 더욱 심해질수록 아이러니하게도 변호사들은 돈을 벌게 된다. 한번 프랑스 소설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의 이야기를 보자. 잘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 간략히 이야기를 하자면,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간 감옥살이를 하게 되고, 이 감옥살이 이후 심경의 변화를 묘사한 소설이다. 요즘 시대로 말한다면, 파리바게뜨에 들어가 몰래 빵 한 조각을 주머니에 넣고 도망갔다가 절도죄로 19년 동안 감옥생활을 한 셈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빵 한 조각을 훔친 사건이다. 만약 우리 나라에 빈부격차가 극심해져서 빵 조차 사먹을 돈이 없는 서민들이 많아진다면, 이런 사소한 절도 사건은 빈번할 수 밖에 없다. 생계형 범죄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런 범죄가 많이 발생한다면 변호사들은 바빠질 수 밖에 없다. 돈을 버는 것이다. 물론, 생계형 범죄자들을 변호하는 것은 긍정적인 측면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19년의 형량이 10년 혹은 5년으로 줄어든다고 해도 삶의 고통은 여전하다. 감옥에서 빨리 나오면 나올수록 빈부격차가 줄어들 가능성은 별로 없는 것이다. 게다가, 변호사는 이런 사회의 빈부격차를 줄어드는데 아무런 노력 및 역할을 하지 못한다. 말 그대로 행동은 안하고 그저 입만 살아 있는 직업이 변호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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